펄펄 끓는 유황물에 몸을 담궜다 뺐다…
운젠지옥 고문과 조선인 이사벨라
운젠(雲仙)은 화산에 의해 생긴 온천지역이다. 지금도 산 군데군데에 부글부글 끓는 유황온천물이 나오고 있다. 1628년에 들어서 도쿠가와 막부의 고문방법에 변화가 왔다. 기리시탄들은 순교자들을 찬양하며 순교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죽지 않을 만큼 고문했다. 즉 끓는 유황물 붓기, 사지절단, 입술 코 베기, 톱 쓸기, 이마에 낙인찍기 등 배교를 종용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초기 기리시탄 전성기의 포르투칼어 「christao=貴理師端=기리시탄」이, 박해시대에는 「切支丹=기리시탄」, 잠복시대에는 「鬼利死炭=기리시탄」이라는 한자로 사용됐다. 글자를 보아서라도 기리시탄 시대변화를 알 수 있다.
1629년 나가사키 막부의 행정장관으로 취임한 우네메(采女)는 기리시탄 묘를 파서 유골까지 꺼집어내라고 하였다. 기리시탄의 시체까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년 8월 3일 우네메는 나가사키 감옥에 있는 기리시탄들을 운젠 지옥으로 연행해 갔다. 이들을 벌거숭이로 만들고 양팔은 뒤로 묶었으며 목에는 큰 돌을 달았다. 그리고 뜨거운 유황물을 퍼부었다. 피부는 흐트러져 벗겨졌다. 밤낮 이 고문이 계속되어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앙을 버렸다. 남편들의 이 모습에 부인들의 마음도 약해졌다.
다만 한 사람, 조선의 부인 이사벨라만이 끝까지 인내하여 버티었다. 형리가 『너의 남편도 굴복 했어』라고 하자 『나는 하늘에 영원한 남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일은 이 세상의 남편을 따를 리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음날도 이사벨라는 목에 큰 돌을 달고 뽀글뽀글 끓어 나오는 분출구에 넣어졌다. 이번에는 머리 위에 돌을 얹어놓고 『만약 이 돌이 떨어지면 그것은 네가 배교한다는 표시다』라고 하였다. 이사벨라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돌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돌이 떨어지더라도 나의 마음은 변한 것이 아닙니다』 돌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 무게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한다.
다음날 아침 더 심한 고문에도 이사벨라는 굴하지 않았고 구경꾼들은 지켜보고 있는 터라, 형리들은 『우리들은 10년, 20년이라도 계속할 거야』 그러자 『10년 20년은 잠깐 사이, 만약 100년이라도 이 고통을 참으며 이 세월을 행복하게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고문 13일째, 형리들은 피곤하여 맥이 풀렸다. 이사벨라를 나가사키로 연행했다. 그녀는 먹지도 자지도 않아 서있을 수도 없었다. 온 몸은 피부가 벗겨져 퉁퉁 부오 오르고 썩어가는 곳도 있었다. 병졸은 그녀를 행정장관 앞에 끌고 갔다. 억지로 손을 잡고 배교한다는 사인을 하게하였다. 그리고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쫓아 보냈다.
운젠 지옥의 고문을 받고 순교하여 복자품에 오른 분이 수사 신부 7명이 있다. 이외에 이름 없는 기리시탄(切支丹)들이 여기서 열탕 고문을 받았다. 현재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있고 여기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끓는 유황 물 만큼이나 뜨거운 감동을 주고 있다.
박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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