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진짜 하느님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원조집」 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 옆집에는 「우리집은 진짜 원조입니다」라고 걸려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집에는 「우리집이 진짜 참 원조입니다」라고 도배를 해놓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가짜고 자기만 진짜라고 목청을 돋우고, 요란 법석을 떠는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에 바람처럼 일어나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선과 거짓신앙을 폭로하고 바알 예언자들과 한 판 승부를 벌여 피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같은 열정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을 죽이기로 작정한 이세벨의 사람들을 피해 먼 길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 이제는 지친 몸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그는 「진짜 하느님」을 만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바람 속에서는, 가슴 속에 움켜쥔 돌로는, 마음속에 불처럼 타오르는 야망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한 때의 열정이 식으면 남는 것은 허전함이고, 한때의 분노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상처이며, 한때의 광기가 사그라지면 남는 것은 초라한 그림자뿐입니다. 바람도, 지진도, 불도 다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합니다. 불같은 열정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천둥과 같은 외침 속에 숨겨진 자기기만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바람 같은 몸짓 속에 드리워진 오만의 그림자를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세상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불같은 베드로와 고요 속에서 일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을 흔들어 놓은 바람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을 들뜨게 하는 야망의 불길로는 결코 당신의 길을 함께 갈 수 없음을….
그럴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거짓 야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려고 기도하셨습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선출직후 첫 인사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나를 맡깁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야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속에서 본심(本心)을 잃지 않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을 뒤흔드는 바람 속에서 헤메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풍파와 야심에 찬 베드로를 물속에 곤두박질치게 했던 두려움은 오늘날 우리 자신과 교회가 겪고 있는 현실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도 나도 큰 것을, 강력한 것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한 것들을 추구합니다.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로서도 그러합니다. 외적인 활동에 바쁘고 가시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다보면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의 야망에 집착하게 되어 결국 속빈 강정처럼 내적 공허함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은 큰일을 하시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숨죽여 사는 죄인들을 구하러 오신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들리지 않는 곳에 계십니다.
믿는 이는 그러한 곳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믿는 이는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들리지 않는 것,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란한 나팔 소리나 요란한 징과 꽹과리 소리가 아니라 작지만 분명한 침묵의 소리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폭풍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서로를 흔들어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라놓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으로 가득 차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와 화해를 호소하는 바오로사도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살아야할 몫입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의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진계유).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