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인격적인 만남 이뤄져야”
부스러기 신앙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방식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시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만드셨기에 우리 모두가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야할 존재로 대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수단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뜻을 이룰 수단, 내 만족을 채울 수단으로 대합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상품처럼 이용가치만 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은 진실한 관계로 변화하는 신앙의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가나안 여인은 인간적인 동기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열망하고 있던 중에 예수님께서 그녀가 사는 지방을 지나시게 되자 뛰어나가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예수님을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딸의 고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애절하기 그지없지만 이 여인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신통한 능력을 이용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원의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고 그것을 더 성숙한 신앙의 차원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그 여인의 청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녀의 딱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자,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 여인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시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다가온 동기를 신앙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위선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버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주여,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예수와 여인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인과 대화에서 주님께서는 뜻밖에도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이 말씀을 듣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모멸 찬 거절이 아니라, 이 여인이 참으로 당신을 「목적」으로 대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이었으며, 그 여인은 장하게도 그 시험에 통과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아직도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다면 예수님의 말을 모욕으로 알아듣고 벌써 그 자리를 떠나 버렸을 것입니다. 여인의 재치 있고 끈질긴 대답을 들은 주님께서는 그녀의 마음 중심에 참된 「너와 나」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고 응답해 주심으로써 그녀의 청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던 여인의 마음은 이제 예수님께 대한 신앙으로 성숙해진 것입니다.
유다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서로 인격체로 존중해 줌으로써 사랑과 신뢰를 가져오는 「나와 너」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이용 가치나 상품 가치로 취급하는 「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변화는 「나와 너」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나의 만남은 「나와 그것」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너」의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정신적 여유를 즐기는 방편의 하나도 아니며, 영적 호기심을 채우는 수단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전 존재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용감한 투신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정성과 힘을 다하는 끈기 있는 노력입니다. 참된 신앙은 이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는 힘입니다. 내 신앙의 동기가 비록 조금은 불순하고, 우리가 주님께 바라는 것이 약간은 이기적인 것일지라도 우리가 끈질기게 주님께 나아간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불순한 욕망과 나약한 의지를 순수하고 강한 믿음으로 키워 주실 것입니다.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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