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쯤 되었을까? 따르릉거리는 전화벨 소리에 비몽사몽으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되었다. 전화기속에 들려오는 혀꼬부라진 음성은 한숨섞인 50대 중반의 남성으로 보였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20분이었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첫마디가 『신부님! 하느님께 잠 좀 자게 해주소』하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만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느님께 전하지 않겠어요?』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는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한 1∼2분이 지났을까. 그는 ○○이라고 대답하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먹었는데도 정신만 말똥말똥하단다. 그래서 하도 답답하여 무례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의 돌발적인 전화상담은 새벽 4시경에 가서야 끝이 났었다.
○○형제는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으로서 심성이 곱고 성실한 신앙인이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며 교회활동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기불황의 여파로 사업이 부도나고 집마저 담보로 넘어가 지금은 전세방에 살아야할 만큼 무직자가 되었다. 부인도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할 형편이다보니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이리뛰고 저리뛰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녀중에 남자애는 학교를 휴학한 채 군에 입대해 버렸고, 막내딸은 가출(?)상태라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히는 요즈음 세태의 가정,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는 가족간의 심리정신적인 병리현상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까지 괴리현상을 일으켜 지금은 본의 아니게 냉담상태이기도 하단다. 무일푼의 무직자로 전락한 집안의 가장은 무기력한 남정네가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그저 한숨짓는 소리만 메아리치게 할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부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의심과 불안으로 의처증까지 일으켜 부부싸움이 이틀을 멀다하고 다툰단다. 생활의 짜증으로 지칠대로 지친 부인도 그저 틈만 나면 사니 못사니 하는 앙탈과 한숨으로 잠을 지새운다고 하였다. 사춘기의 막내딸은 갑작스럽게 변화된 가정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곧잘 집을 나간다고 하나 아직은 위험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요즈음 가정의 붕괴가 이렇듯이 심리정신적 병리현상으로 치닫게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형제의 가정안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현실의 암담함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날 밤의 전화상담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들어주고 편안한 정서적 안정을 갖게 해 주었고, 그리고는 조만간에 나의 상담실로 찾아 와서 문제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실마리를 풀어보자고 권하였다.
야밤중에 발생한 전화상담은 ○○형제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는지, 『신부님! 고맙습니다. 역시 신부님은 저의 전부입니다. 이제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하느님도 신부님의 부탁을 잘 들어주네요. 정말 고맙습니다』하면서 미안함과 감사함의 반복속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이 싹 달아나 버린 나는 어쩌란 말인가? 쇼파에 앉아 그동안 끊었던 담배 한 대를 다시 피우면서 푸념담긴 소리로 『나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잠을 청하노』.
에라 모르겠다. 직통으로 청하자. 『하느님! 잠 좀 자게 해주소』
조옥진 신부〈부산가톨릭대 영성심리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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