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신앙의 기초
요즘 온 나라가 도청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숨어서 몰래 엿들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고 남의 비밀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사람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권력이나 조직일수록 비밀스런 감시와 철저한 통제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합니다. 그러한 비밀스런 권력은 마치 고인 물과 같아서 스스로 고립되어 썩게 되고 마침내는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왕의 시종장으로서 권력을 잡았던 셉나가 하느님의 뜻에 기초를 두지 않고 인간적인 꾀와 술수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듯이 신앙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을 기초를 삼으면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야할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시기 위하여 당신이 누구신지, 당신이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당신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어보신 다음,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시몬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답한 예수님은 사뭇 다른 차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을 보고 말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아드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위에 교회가 서있습니다. 교회가 이 신앙고백 위에 서 있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 베드로를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시고 죽음의 힘도 감히 교회를 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 보다 우월하거나, 인간적인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교회가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위에 굳건히 서서 인간의 마지막 한계까지도 극복하면서 끝까지 주님께 나아가야한다는 당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아 세상 끝 날까지 그 사랑을 선포해야 할 교회가 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완수해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맡겨주신 열쇠는 엘리아킴이 받았던 열쇠 보다 훨씬 중요한 하늘나라의 열쇠이며 세상의 구원을 위한 열쇠입니다. 그 열쇠를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그 열쇠의 주인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열쇠를 맡은 사람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 열쇠의 주인인 것처럼 그 열쇠를 독점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한다면 셉나의 경우처럼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맙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사람이 가르쳐준 내용에 머문다면 우리의 신앙은 우리 자신에게도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려 들고 마침내는 하느님 마저도 상품화하고 거래하려드는 세속적 신앙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체험에서 우러납니다. 내 이웃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 고통 받는 형제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하느님의 아들을 만나는 체험,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위에 세워진 신앙만이 인간적인 유혹과 두려움을 넘어 우리를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은 지금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며 교회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통해 세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실천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아볼 때 세상도 우리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풍요와 지혜와 지식의 심오함에 맛들이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도 풍성하고 지혜롭고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 속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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