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과 밖에서도 같은 얼굴로”
두 얼굴의 사나이
오래전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두 얼굴의 사나이-헐크」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본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인 주인공이 화가 나거나 심한 자극을 받으면 온몸이 부풀어 커지고 옷이 찢겨지고 얼굴은 괴물처럼 변하고 괴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탈출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샤프츠버리가 『한쪽 얼굴로는 미소를 억지로 짓고, 다른 쪽 얼굴로는 노여움을 드러내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얼굴』로 표현한 로마신화의 야누스도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두 얼굴의 사나이만 두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낮에 쓰는 가면이 다르고 밤에 쓰는 가면이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얼굴을 하고 교회 바깥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바꾸어 쓰고 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랑받는 제자 중의 한사람이었고, 예수님께서 중요한 기적을 베푸시는 자리에 항상 함께 했습니다. 이전 복음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라고 올바로 대답했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야무지고 열정에 찬 베드로의 모습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이쯤 되면 알아들을 줄 알고 십자가의 수난을 이야기 했더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로막고 나섭니다.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 안에 머물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준엄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똑같은 베드로인데 어느 때는 예수님의 칭찬과 함께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받았고 어느 때는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요, 악의 상징인 사탄이라고 책망을 받을 수가 있는가? 어떻게 같은 사람이 「베드로」(반석)라고 불려 지기도 하고 또 「사탄」(분열시키는 자)이라고 불리기도 할 수 있는가?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인간은 천사처럼 행동하려고 하면서 사실은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비극이 있다』고 말합니다. 짐승처럼, 악마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천사처럼, 예수님처럼,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데 살아온 결과를 뒤돌아보면 때로는 짐승처럼 내 만족만을 채우려, 내 욕심만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깊이 체험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로마 7,15).
신앙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바라는 것을 일치시켜 나가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할 때에는 아무리 힘든 고통도, 어렵고 두려운 일도 그 결과가 평화로우며 축복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아닌 내 뜻만으로 살아갈 때에는 아무리 떠들썩하고, 재미난 삶도 그 결과가 어수선하고 불만스러워서 또 다른 욕망의 늪 속에서 빠져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을 일치 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게 되고 내 뜻만을 고집하다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삶이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루의 삶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하느님 앞에 머물러 내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잠시라도 멈추어 서서 내 삶이 하느님을 향해 방향 지워졌는지, 아니면 내 욕망만을 따라 살아가는지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하는 자리에 신앙이 자라나고 은총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산 제물로 바치는 일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입니다(로마 12, 2).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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