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생활중 부부 영세시켜
루비노 제1, 2단의 순교와 배교를 최후로 신부를 태운 배는 보이지 않았다. 1700년경에는 수십 개의 마을에서 기리시탄은 한사람도 없다는 보고가 있었다. 쇄국이 엄하여 입국하기는 상상도 못할 시대가 되었다. 선교사가 잠입해 온지 55년이란 세월이 흘러 막부도 안심한 듯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신부, 선교사가 어떠한 인물인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은 목자 없이 흩어진 일본의 어린양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죠바니 밥티스타 시돗치(G. B. Sidotti 41세) 예수회 신부가 1708년 8월 29일 쇄국과 금교 하의 일본에 혼자서 잠입한 것이다. 그러나 즉시 체포되어 기리시탄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죠스케-오하루 부부 사건
시돗치 신부가 기리시탄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6년이 지난 1714년2월 어느 날이었다.
키아라 신부의 봉사자로 있던 죠스케(長助)와 오하루(お春) 부부가 신부가 죽은 후, 시돗치 신부에게 봉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부모의 죄로 어릴 때부터 이 수용소에서 평생 노예와 같이 생활해 오다가 부부가 되었다. 이들 노부부가 수용소 소장 앞에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아무쪼록 법대로 처분해 주십시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벌어져 소장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물은 즉, 『옛날 우리들의 주인(키아라 신부)이 그 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몰랐지만 시돗치 신부가 그 것 때문에 체포된 것을 보고 우리들은 덧없는 생명을 아까워해서 긴 세월 한심스러운 놈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부의 가르침을 듣고 세례를 받아 그 신도가 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50세가 넘은 두 부부는 각자 다른 옥에 감금되었고, 신부는 좁고 어두운 지하밀실에서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신부는 이국 만리를 와서 이곳에서나마 두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쁨으로 밤낮 두 부부를 위해 기도하였다. 두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신앙을 견고히 해서 죽더라도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된다』며 날마다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었다 한다. 7개월이 지난 10월 7일, 먼저 죠스케가, 얼마 후 오하루도 병사하였다. 이 때부터 시돗치 신부도 발병하여 힘이 다 한 것이 한 밤중이었다. 1714년 10월 21일, 이국의 어두운 지하 감방에서 47세로 그 생애를 마쳤다.
시돗치 신부의 인격과 식견에는 그를 심문하던 에도의 정치가 아라이 하쿠세키(荒井白石)도 존경과 탄복을 하였다 한다. 아라이는 시돗치 신부를 심문하면서 얻은 서양문물에 대한 지식으로 「서양기문」을 썼다. 여기서 그는 막부가 쇄국의 근본 이유로 하는 기리시탄의 탈국론(奪國論)을 부정하고 있다. 「서양기문」은 일본에서 양학 발흥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기리시탄 수용소는 대화재로 전소되었다. 수용소는 다시 재건되지 않았으며 잡초가 우거진 채 대지의 흔적만 남아 있다가 1792년에 무사들에게 분할되었다. 150년간 존재한 기리시탄 수용소의 모습은 사라졌고 기리시탄의 일도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다만 시돗치 신부의 소지 유품 중 「엄지 손가락의 마리아」 유화 등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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