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삶의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15년 세월의 흐름이 한 사제의 영성심리상담의 사목일기 속에 고이 간직돼 가는가 보다.
전국 각지의 이름 모를 선남선녀들이 다급한 전화 목소리와 초췌한 모습의 사연으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주던 그들, 지금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모든 삶의 갈등을 훌훌 털어 버리면서 은혜로운 삶의 치유안에 머물러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특별히 한 자매님의 다급한 사연도 먼 옛날의 추억으로 돌릴 만큼 이제는 가족들의 관심과 배려로 평온한 삶의 정착속에 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유난히도 그 자매님과의 영성심리상담은 「가족치료」라는 측면에서 나에게 좋은 여운을 남겨 주었고 사목상담자로서의 열의와 정성을 다 쏟도록 한 특이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어둠이 깔리고 평온한 휴식을 취할 때쯤 전화가 걸려왔고 다급한 음성으로 자신의 세례명을 밝히면서 가족간의 심각한 불화와 위기, 종교적인 문제 등과 함께 도움을 청하였다. 약속을 정한 날 상담실로 들어서는 자매의 모습은 귀티가 나는 50대의 여인이었다. 문제의 상황을 다 들은 후,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가족전체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상담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진단을 내리고, 나는 첫 번째의 상담을 마치면서 그 자매에게 남편과 딸을 함께 만날 수 있기를 요청하였다. 상담의 진전이 생각외로 잘 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딸이 수락하여 함께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부인이 함께 먼 곳에서 내려왔고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딸도 처음에는 상담을 거절할 뜻을 비쳤지만 예상외로 밤늦은 시간에 부산에 옴으로써 가족 모두가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먼저 남편과의 개인상담에서 부부관계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부부치료」의 여러 가지 기법을 활용하며 배우자에 대한 남편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냈다. 또 삶과 신앙의 차원을 재발견하는 계기도 마련해 보았다. 남편은 전문직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 가족의 화목과 편안함을 위해 가장으로서의 위치에 확고함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딸과의 상담은 초기에 매우 어려웠다. 왜냐하면 엄마에 대한 증오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특별히 게스탈트 심리치료중의 하나인 「빈의자 역할놀이」를 통하여 엄마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상담자와의 공감대(Empathy)가 형성되자 가족전체의 평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딸이 함께 한 상담종결에 와서는 모두가 흡족하리만큼 화해의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남편과 딸에 대한 편집증 반응을 일으켰던 자매님의 응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가족사랑의 일치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상담체험이었다. 시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 다시 한번 더 치유의 만남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영성심리상담」이란 나의 삶 나의 여정이 결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감회를 나의 사목체험 현장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이 글을 마치면서 그동안 나의 보잘것없는 체험담을 읽으며 함께 공감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나에게 성령의 은사로 주신 이 은혜로운 만남의 장터를 아무쪼록 잘 꾸려나가기 위해 나의 삶 나의 여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려 본다.
-조옥진 신부 〈부산가톨릭대 영성심리상담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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