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마음과 마음 전해요"
여름휴가는 농아선교회 수련회로
청각장애인 마음 이해가 더 중요
매주일 오전 10시30분 광주 북동성당에는 수화로 미사를 봉헌하는 이들이 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 늘 수화로 통역해 주는 이가 있다. 광주 가톨릭농아선교회 「손사랑」 회원인 김옥희(아녜스.32.광주 운암동본당)씨.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사통역은 물론 그들과 비장애인들 사이의 입과 귀가 되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돕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장애인복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스무살 때 처음 수화를 접하게 되었다. 손을 이리저리 놀리고 때로는 표정을 섞어가며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열심히 배웠고 농아선교회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수화가 좋았고 청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면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청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은 늘 한 마디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와 같은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영어는 배우려고 노력해도 수화는 그저 그들의 말이려니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도 이처럼 처음부터 수화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미사를 통역하기 시작한 날은 등에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했다. 미사 중 신부의 강론을 듣고 수화로 통역해야하지만, 단순히 수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전해야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따랐다. 어떤 때는 통역을 해 놓고서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한 청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보청기에 관한 자료를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료를 받은 청각장애인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자료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것이 아닌가. 알고 봤더니 난청의 경우에는 보청기가 도움이 될지언정 완전한 농(聾)인 경우에는 아무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됐다. 이처럼 청각장애인들과 생활하는 것이 단순히 수화만 알았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을 계기로 그녀는 더욱 수화를 열심히 배웠으며 점점 수화실력은 늘었다. 12년 동안 직장의 휴가를 농아선교회 여름수련회 일정에 맞추어 그들과 함께 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낯선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경계심을 갖던 청각장애인들과도 어느덧 마음을 터놓고 이해하는 사이가 됐다.
『사람들이 수화 노래나 수화 공연을 보고 막연히 수화통역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자칫 수화를 재미로 한다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배운다면 그것은 오히려 청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씨는 단순히 수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보다는, 청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한다.
김씨는 일주일에 두 번 가톨릭센터에서 수화교실 강의와 매주 미사통역, 교회내외의 큰 행사에서 수화통역까지 힘들고 바쁜 일상이지만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또한 김씨는 언제든지 통역을 부탁하는 청각장애인이 있을 경우 시간을 쪼개 달려갈 정도로 수화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단다.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나, 직장에서 이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비장애인인 제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앞으로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따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수화봉사를 하겠다』며 소박한 꿈을 밝힌 김옥희씨. 『많은 사람들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장애인 항목 중에 청각장애인 항목은 빠질 수도 있겠죠』라며 웃음 짓는 그녀의 밝은 미소에는 장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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