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일 교회 교류 역사와 성과
마음의 빗장 풀고 ‘한 형제’ 확인
1996년부터 10차례 한일 주교모임
간담회 통해 공통된 역사 인식 다져
가깝고도 먼 이웃, 한국과 일본 사회가 걸어온 길은 그대로 양국 교회에도 투영돼 「가깝고도 먼 형제」로 남아왔던 게 두 교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과 함께 「형제」라는 의식은 한·일 두 나라 교회 신자들에게 오히려 이중 삼중의 무거운 중압감으로 다가왔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답답한 상황이 이어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본격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양국 주교들의 만남이었다.
매년 한·일 주교모임
1995년 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총회에서 당시 두 나라 주교회의 의장이던 이문희 대주교와 후미오 하마오 주교가 「두 교회가 극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공통된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함으로써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한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거듭나며 화해와 일치를 향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두 교회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1996년 2월 16일 한국과 일본 주교 5명이 일본 가톨릭회관에서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첫 모임을 가진 이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은 지난해 11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0회 모임에는 한국에서 18명, 일본에서 13명 등 모두 30명이 넘는 주교가 참여하는 교류의 장으로 발전해 한국과 일본 양국 교회의 친교의 징표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역사관련 강의 마련
한·일 주교들은 첫 간담회 이후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역사교과서 문제와 한일관계」 「전후의 역사인식」(3회) 「16, 17세기 한일 그리스도교 관계사」(5회) 등을 주제로 한일 역사와 관련된 강의를 마련해 공통의 역사 인식을 다져왔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2003년 11월에 열린 교류모임에서는 「관동대지진 발생 80주년-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교훈」을 주제로 다뤄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일본 주교들로 하여금 교회 입장에서 먼저 진지한 접근을 시도해 용서와 화해의 물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교류모임의 소중한 결실로 꼽힐 만하다.
아울러 두 나라 주교들은 모임을 역사적 문제를 둘러싼 만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목자로서 부딪히는 현실적이고 사목적인 문제까지 나눌 수 있는 장으로 확대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양국 주교들은 사목의 연관성을 지닌 양국 주교회의 유관 위원회 담당 주교들간에 세분화된 사목적 과제를 중심으로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데까지 교류의 성과를 확장시켰다.
또한 양국 주교들은 그간의 모임을 통해 주교간 교류뿐 아니라 신부, 나아가 신자들간의 교류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교류모임에서는 양국 교회간의 교류 발전을 위한 연구와 논의를 진행할 담당자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한·일 각국에서 담당자를 뽑아 구체적 방안과 계획을 세워나가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의식에서 출발해 사목적 공동 관심사로 지평을 넓혀옴으로써 한·일 양 교회는 물론 아시아교회 역사에서도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실제 두 나라 주교들은 2002년 11월 수원교구 의왕 아론의 집에서 열린 제8차 교류모임에서 주교 교류를 향후 중국 및 극동아시아 지역 주교 모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나가기로 뜻을 모은 바 있어 아시아와 세계 복음화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청년 교류모임
한·일 양 교회의 미래로, 주교들의 교류와 아울러 눈길을 끌어온 한일 청년 교류모임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양국 청년들의 신앙과 역사 문화교류의 장으로 깊이와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1997년 8월 프랑스 루르드성지에서 개최된 세계청소년대회에 앞서 8월 11~14일 처음으로 열린 제1차 「한일 청년 교류모임」을 출발점으로 하는 두 나라 청년들의 만남은 두 교회는 물론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게 하고 희망을 새롭게 엿보게 했다는 면에서 적잖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6회 행사까지 서울대교구와 도쿄, 요코하마교구 등 한정된 틀 내에서 교류를 해오던 두 나라 청년들은 이후 대구, 군종, 수원교구 등으로 만남의 범위를 넓히며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아왔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우정을 쌓아온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라는 게 양국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처럼 한일 청년교류 모임이 지속적이고 내용적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던 이면에는 주교 교류모임을 통해 다져온 양국 주교들의 관심과 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2002년 8월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8차 한일 청년 교류모임은 첫 모임 이후 연례적으로 개최돼 오던 관례를 깨고 그 해 2월 열린 7차 대회 이후 6개월만에 마련돼 한일 청년 교류모임이 단지 연례적인 「행사를 위한 행사」 차원을 넘어서 양국 교회의 빠질 수 없는 청년 행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울러 한일 청년 교류 모임은 프로그램 면에서도 양국의 미사전례를 함께 거행하면서 민박을 통한 상대국의 가정 체험을 비롯해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신앙 안에서 우의를 다지는 내용 등으로 틀을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오고 있다.
2000년 4차 모임 때부터 지도신부로 함께해오고 있는 일본 「한일 교류모임 후원회」 대표 이나가와 게이조오 신부는 『한일 청년들이 만나서 나눌 수 있는 최대의 열매는 우리들 안에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다는 것』이라며 『한일 청년들의 교류는 양국 교회, 더 나아가 아시아 교회에까지 연대와 나눔, 신앙의 증거라는 결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도자 교류도
한국과 일본 교회의 수도자들이 양국에 대한 상호 이해와 역사 바로 세우기에 동참하고자 가진 첫 공식 만남은 1996년 8월 일본여자수도자장상연합회 회장 유딧 가마다 수녀를 비롯한 3명의 수녀가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이뤄졌다. 일본 수도자들의 제안으로 빛을 보게 됐다는 점은 다른 교류모임이 한국측의 제안이 출발점이 됐다는 면과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만남 또한 그 해 2월 도쿄에서 이뤄진 한일 주교들의 만남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여자수도회 대표단은 첫 방한 기간 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의 강의를 듣는가 하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신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가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듬해 4월에는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대표단 5명이 일본을 방문,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 등지를 찾아 아시아 평화를 위한 수도자들의 몫을 모색하는 등 이후 한·일 교회의 수도자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이어오며 두 나라 교회를 살찌우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자주 만나다 보면 사랑의 마음 이해”
“역사 부교재 출판·청년교류 모임 등 지속적 만남 필요”
■한·일 주교모임 이끈 이문희 대주교
『놀라운 것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우리 조상들도 신자가 되고 순교하시어 일본 교회에 밑거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한 형제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1996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이끌며 두 나라 교회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형제」 의식과 아울러 「형제애」를 역설한다.
1995년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총회에서 주교 교류 모임을 제안해 이후 한·일 교회간의 교류가 전례 없이 확대되는데 주춧돌을 마련한 이대주교는 지속적인 만남과 교류 속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주 만나다 보면 한국인, 일본인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이고 생각과 마음이 같아지고 서로 참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이대주교는 「자기를 버리는 훈련」을 강조한다. 모두가 이 훈련을 더 잘해나갈 때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더 잘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공통된 인식을 심어나가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위한 보완용교재 발간을 목적으로 첫 걸음을 뗀 두 교회의 여정은 그간 역사부교재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출판과 교류모임을 계속하기로 하는 두 나라 주교들의 합의로 결실을 맺었다. 나아가 청년 교류모임 등 부문별 교류는 물론 사목상의 공생을 위한 소공동체운동 교류로까지 확장되는 등 꾸준히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사목과 관련해서도 이대주교는 지속적인 교류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교류를 열심히 하다보면 서로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이대주교는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를 당부한다.
『전후 세대의 일본인은 이전의 과거를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일본인들은 그들의 사고방식,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갈 청소년들의 미래」를 그리며 화합을 향한 발걸음을 역사의 도정에 새기고 있는 이대주교는 공통된 역사 인식을 세워나가는데 모든 신자들을 초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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