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남학생들인 학교에 근무하다보니, 남성들이 나누는 악수가 내 인사법이 되어버렸다. 개강을 하고 서로 다시 만나 악수를 하면서 표정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도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더 정직한 표정이 손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나에게 화난 손, 나를 재미있어 하는 손, 나에게 수줍은 손, 호탕하고 명랑한 손….
다니 5장은 난데없이 나타난 「하느님의 손」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손이 그 사람 전체를 말해 주듯이 하느님의 손가락은 그분의 존재 전체를 기억하고 상징한다. 사랑, 기쁨, 불안, 오만, 권태를 경고해주는 그분의 손을, 오늘 나는 내 일상 안에서 느낄 수 있을까.
전체 개관
지금까지(다니 1~4장)가 느부갓네살 치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면, 5장은 벨사살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온 기물을 사용하여 술을 마시고 흥청대는 연회와 이런 신성모독의 죄가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도하고 있다. 그 용서받지 못할 죄의 결과는 왕의 비참한 죽음과 바빌론 대제국의 멸망이었다.
벨사살과 이야기의 역사성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은 벨사살이라는 인물이다. 다니엘서의 다른 이야기들처럼 다니 5장 역시 역사적인 사실과는 좀 다른 내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빌론의 왕으로서 재위했던 적이 없었고, 19세기에 발견된 몇몇 설형문자 문서들은 벨사살을 나보니두스의 아들로 명기하고 있다. 나보두니두스는 재위 기간 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거의 왕궁에 부재하였고, 따라서 그의 아들 벨사살이 관직을 대신 수행했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특히 다니엘이 벽의 신비한 글자를 해석한 공으로 나라에서 「세 번째 높은 지위」를 받게 되었다는 언급(5, 16.29)은 당시 벨사살이 바빌론의 두 번째 지위에 있었음을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5장 내내 벨사살이 「왕」으로 호칭된 것과 그의 아버지가 느부갓네살이라고 되어있는 것(2절)은 쉽게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느님의 손가락
성서에 등장하는 많은 놀라운 묘사들 가운데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다니 5장에 등장하는 손과 그 손가락이 벽에 쓰는 글씨 「머네 머네 터켈, 그리고 파르신」(25절)이라는 문구이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하여 당시의 사건 현장으로 가보자. 휘황찬란한 불빛과 귀를 때리는 음악, 웃음소리로 가득한 잔치에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난데없이 등장한 커다란 손 때문이었다. 모두가 놀라 그 곳을 쳐다보니, 해괴하게도 사람의 손만 등장하여 벽에다 글씨를 쓰고 있었고(5절), 그 글씨의 내용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괴한 말이었다(7~8절). 흥청대던 파티 분위기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고, 임금 역시 그 「얼굴빛이 달라지고」, 「허리의 뼈들이 풀리며 무릎이 서로 부딪」(6절)칠 정도로 두려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자는 다니엘뿐 아니라 역대 성서학자들에게도 과제로 주어진 암호로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무게나 화폐의 단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는데, 다니엘은 벨사살의 날수를 「계수하여」 보니 날수가 다 되었고, 그의 「무게를 달아보니」 모자랐으며,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져」 메대와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는 해석을 제시한다(26~28절 참조). 이전의 경우와 같이 여기에서도 바빌론 현자들의 실패(7~9절)와 다니엘의 승리가(10~12절) 다시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급격하게 마무리된다. 벨사살이 하느님 성전의 그릇들로 술을 마시고 유흥에 빠지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 모독의 죄악을 저지른 탓이었다(17~23절). 에피소드는 급작스런 적의 침략을 언급하고 왕이 그 밤에 독살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따뜻한 손
어느새 손끝이 차가와 지는 계절이 왔다. 손이 또 하나의 감추어진 얼굴이듯, 지독했던 여름은 서늘한 가을의 얼굴을 감추고 있었던 것일까.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을이 다가왔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여름이 무섭다고 느꼈을 만큼 지독했던 더위였다. 그러나 그 어떤 난폭한 더위도 하느님의 질서를 뒤집지는 못하는 법. 이제 여름은 어디에도 없다.
차가와 지는 계절이지만 하느님의 따뜻한 손을 일상의 굽이굽이에서 느끼고 기억할 때, 엉겨 붙어 있는 듯한 생의 복잡한 문제들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벨사살의 궁전 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따뜻한 손가락으로 써주시는 그분의 메시지를 통해, 다가온 가을이 모두에게 좀 더 긍정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었으면 한다. 가을의 미소를 언뜻 본 듯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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