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원폭 피해자 문제 등 화해 가로막는 현안 가득
한·일 교회가 함께 앞장서서 부조리한 현실 극복해 나가야
5. 함께 풀어야 할 숙제들
『한국에서는 「위안부」 「정신대」를 혼용하면서 모두가 일본군에 끌려가 성적 노리개가 되었던 사람인 것으로 정의해 왔다. 그러나 위안부와 정신대는 개념부터가 완전히 틀리다. 「정신대」는 15~40세의 여성들이 생활고를 위해 스스로 갔거나, 잘못된 정보에 유혹되어 갔거나, 또는 꾐에 빠져 갔던 사람들이며 이들은 많건 적건 보수를 받고 근로를 했던 사람들이다』
일본 우익의 망언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저명한 학자다. 매주 수요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이 학자의 논리는 왜곡되고 꼬일대로 꼬인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교회는 그간 사회 안팎에서 한·일 관계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러한 종류의 논쟁들에서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한·일 두 교회간의 관계나 교류 등에도 그대로 투영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두 나라 교회는 일제의 강압 통치로 인해 야기된 아픈 과거 역사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접근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일제의 통치로 인한 아픈 역사에 본격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올바른 역사 정립을 향한 모색의 과정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교회 내 여성들의 움직임이다.
1993년 4월 여성 평신도가 중심이 돼 창립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천주교 여성공동체는 창립 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가입해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에 더해 여자 수도자들의 모색은 이런 교회 내의 움직임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 1995년 이후부터 대사회활동을 가시화하기 시작한 여자 수도자들은 그 첫번째 모색을 위안부 문제로 돌렸다.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95년 8월 21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이 문제에 대한 수도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해 12월 4~5일에는 1800여명의 수녀들이 서울 명동성당에 모여 일본군 위안부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일본 정부의 유엔권고사항 이행 등을 촉구하면서 일본대사관까지 침묵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일본 정부측에 공식사죄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 정부에도 외교적 해결노력을 촉구했다. 또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과 1만7000여명이 서명날인한 용지를 전달했다.
이어 1996년 11월 25~27일에는 40개 수도회가 참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철야단식기도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일본교회의 노력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한국 수도자들의 활동은 일본 수도자들과의 연대로 나아가게 된다. 일본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일본 총리에게 한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의 활동에 동조하는 지지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일본 정부가 유엔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다각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 장상연합회의 상임위원 3명이 1996년 8월 서울을 방문해 한국 장상연합회 상임위원들과 종군 위안부들을 만나고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이같은 교류와 노력이 바탕이 돼 한·일 양국의 수도자들은 이후 다양한 연대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일본교회가 범 교회 차원에서 일제 통치로 인한 과거에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종전 50주년을 맞은 1995년부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도쿄에서 제4회 아시아주교협의회연맹 총회가 열린 1986년, 당시 일본 주교협의회 회장이던 시라야나기 대주교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쟁 희생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용서를 청하기도 했지만, 위안부 문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사죄와 책임을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95년 2월 일본 가톨릭주교단은 「평화에의 결의」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우리들의 주변에는 강제적으로 한반도에서 연행되어온 재일 한국인과 전쟁 종군 위안부들이 있다』며 『이런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 사죄하고, 지금 아시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처를 보상해 줄 책임이 있다』며 일본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나아가 같은 해 4월에는 일본 정의와평화협의회가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해 『일본 정부는 「전후 보상은 국가간에 매듭을 지었다」고 해서 개인 보상 문제도 사죄도 없고, 「종군 위안부」였던 분들에게 대해서는 「민간 기금으로 인한 위로금」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며 일본 정부의 입장을 강력히 비판하고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우리들은 전후 보상의 실현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에 요구해 나갈 작정』임을 밝혔다.
화해의 길 열어가야
일제가 안겨준 또 하나의 고통인 원폭 피해자 문제는 두 나라에서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한번도 원폭 피해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같은 현실을 대변해준다.
1962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총 한국인 원폭피해자 7만여명 중 생존자는 3만여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남한으로 귀국한 2만3000여명에서 태어난 2세는 최고 8만여명에 달하며 이들 중 20% 가량이 선천적인 기형을 안고 태어나거나 유전적 질환, 원폭병과 유사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간 한·일 양 정부와 교회가 이같은 문제에 미온적이었던 이면에는 두 나라에 드리운 어두운 과거사가 미래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과거가 부끄러워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주저하고, 져야 할 십자가에 애써 눈을 감는다면 이야말로 한.일 관계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가 앞장서 양국의 양심적인 세력들과 함께 부조리한 현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
고려대 조광(이냐시오.한국사학과) 교수는 『과거가 양 교회에 더 이상 부끄러운 역사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그마저도 신앙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 눈물 교회가 닦아줘야”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순녀 대표
13년 동안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예리고 성, 그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 일곱째 날 성벽을 무너뜨리던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수요시위에 13년째 참여해오고 있는 성폭력 상담소 「평화의 샘」 윤순녀(수산나.61.서울 상도동본당) 소장은 수요시위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성서적 근원을 역설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창립 초기부터 함께 활동해오다 공동대표까지 맡게 된 윤대표는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높은 벽을 지적하며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는 총회 결의를 통해 오래 전부터 매주 두 수녀회가 돌아가며 수요시위에 동참하면서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교회 전반의 무관심은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던 92년 12월, 성탄을 앞두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하고자 나섰던 것도 보속의 마음에서였다.
『약한 민족의 아픔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민족을 위해 희생된 어머니들이라는데 마음이 미치자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윤대표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지 이날 봉헌된 미사에는 전국 곳곳에서 20여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와 뜨거운 눈물을 나눴다.
이 미사가 계기가 돼 윤대표는 이듬해 가을, 행사에 참여했던 할머니를 모시고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등지를 돌며 증언대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년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밑거름이 돼 일본 도쿄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오쿠라 가즈요시 신부를 비롯한 상당수의 일본 신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수요시위에 함께하는 것은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수시로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관계로 확장돼오고 있다.
『하느님께 의탁하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일생동안 숨기고 살아가시는 할머니들을 만날 때면 그 아픔과 슬픔을 가늠하기 힘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80% 남짓이 피해망상을 지니고 있는데다 우울증을 비롯한 갖가지 병을 달고 산다고 밝힌 윤대표는 참다운 치유는 사랑어린 관심에서 비롯됨을 강조한다.
『일본 교회는 부분적이고 사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꾸준히 자신들의 몫을 돌아보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관심과 배려가 더해진다면 두 나라가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데 적잖은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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