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헛된 허영임을 깨달아야”
하느님나라와 기득권
어느 날 오후에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한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다른 아이가 그네를 타려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한참을 그네 옆에 서서 기다리다가 참기가 힘들었는지 먼저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에게 『나도 그네 좀 타게 해줘』 하고 사정합니다.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두 아이는 그네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온 아이가 씩씩 거리며 말했습니다. 『이게 네 그네냐? 너 혼자만 타게…』 그러자 먼저 그네를 탄 아이가 외쳤습니다. 『내가 먼저 왔으니까 내거야!』 아이들의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차지했으니까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벌써 자리 잡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기득권자들이 있습니다. 경제의 기득권자들, 권력의 기득권자들, 학문의 기득권자들, 종교의 기득권자들, 예술의 기득권자들…. 기득권자들은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차지한 것을 나누어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 자기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이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얻은 권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 단지 먼저 들어와서, 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아서 얻은 권리를 자신들이 누려야할 권리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직장이나 단체에서 새식구들에게 가해지는 텃세나, 한 집안에서 먼저 들어온 사람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위에 군림하려 드는 일, 군대에서 고참이 신참들을 구타하고 인간성을 짓밟아 버리는 일들은 쥐꼬리만 한 기득권을 누리려는 초라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불의하게 획득한 권리와 허영 속에 움켜쥔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주님께 돌아오너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는 기득권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의 길을 향해 먼저 걸어 왔지만 하느님 나라의 기득권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방 민족들도 얼마든지 하느님 나라 시민이 될 수 있고,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기득권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먼저 믿은 신자들(구교우)이라고 항상 앞서 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나중 믿은 사람(신교우)도 얼마든지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려주시는 포도밭의 일꾼이야기는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하느님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자비로 대하시지만 인간은 계산하고 비교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베풀어지지만 인간의 계산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남을 판단하고 남을 무시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내려진 곳에는 사랑이 결실을 맺지만 인간의 욕심이 뿌려진 곳에는 기득권이 뿌리를 내립니다. 기득권이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는 다른 어떤 것도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모든 관계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관계의 기득권이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관행들, 그래서 그것을 누리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한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불편하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집착하고 살아갈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자기중심의 올가미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내 삶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임을 깨닫는 사람은 자기가 누리는 기득권이 얼마나 헛된 허영이며 불의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은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욕심과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득권에 얽매여 사는 한 꼴찌의 자리에 남게 될 것이며, 관계의 기득권을 포기 할 때 우리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되고 나눔의 삶에서 오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씨 뿌려 가꾼 결실을 거두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한가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둥근 대보름달처럼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이 차올라, 반가운 얼굴들을 기쁘게 껴안는 축복의 한가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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