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시대' 활짝 열려
교회쇄신과 현대화 정신 평가로
한국교회 사목방향 설정에 한몫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가톨릭대학교가 공동주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천주교회’ 심포지엄의 주제발표 요지를 3회에 걸쳐 지상중계한다. 2차 바티칸공의회의 내용을 이해하고 공의회를 정당하게 평가하는데 한몫 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교회의 지명도 높은 학자와 교회사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 깊이 있는 주제발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심포지엄 의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이념은 ‘현대세계에 대한 적응과 쇄신’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교황 요한 23세는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라고 표현했다. 공의회가 개최된 1960년대는 전 세계가 급격히 변화하던 시대였고, 공의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재확인하고 교회와 사회간의 관계, 그리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개최된 회의였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종합토론을 진행한 노길명 교수는 결론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교회의 쇄신과 일치 그리고 현대화를 위한 대지진이었다”는 말로 그 역사적 의의를 압축했다.
이러한 공의회의 문헌과 정신은 세계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심포지엄은 이러한 공의회 정신이 한국교회 안에 어떻게 계승, 발전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기회가 됐다. 이와관련해 다룬 주제는 총 5가지.
무엇보다 무려 4730쪽에 달하는 ‘암흑속의 횃불’ 총 8권을 분석해 15개의 도표로 요약, ‘한국교회의 사회참여’ 문제를 다룬 강인철 교수의 논문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부를 만한 200주년 사목회의 문서들의 활용 부족에 대한 지적과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 안의 사회 참여 세력들의 퇴조 원인을 ‘교회 쇄신을 위한 노력 부족’으로 풀이하고 있는 강교수의 주장은 참가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교구의 최고 권력과 분배’에 관한 박희중 신부의 논문은 제도 교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한국교회에 자성의 기회를 부여하는 논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행 교회법에는 입법.사법.행정권이 모두 교구장 주교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감당해 내지 못할 때 권력을 분배하는 차원이 아니라, 실천적인 권한의 양도를 위해 권한의 법제화가 분명히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박신부의 논지는 탈 권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톨릭교계제도 안에서 권위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신자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제도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공의회는 평신도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평신도로 하여금 하느님 백성의 능동적인 지위로 돌아오게 하는 교회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일을 했다. 다시말해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됐다는 말이다.
‘평신도의 교회 생활 참여’와 관련 한홍순 교수는 “친교의 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참여를, 평신도들이 성직자들의 보조원으로 그 임무 수행을 돕는 정도로 보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사실 하느님 백성들은 모두가 역할과 방법은 다르지만 교회의 사명 전체에 참여한다. 그 가운데 평신도의 사명과 성직자의 사명은 서로 의지하여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한국교회의 전례 토착화 문제도 이번 심포지엄의 중요한 주제중 하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역과 상황에 따른 여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살려 나가는 ‘문화적 적응’을 허용했다. 이와관련 김종수 신부는 “전례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관련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고유한 문화적 요소들을 교회 예식에 많이 반영할 수 있길” 소망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종교 이해는 다른 종교 전통들에 대한 자기 개방과 포용, 그리고 연대로 집약될 수 있다. 황종렬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은 ‘한국교회의 전통종교 이해’에 대해 “한국교회의 관점에서 그리스도 신앙 전통을 민족적 종교문화의 지평과 통합시켜 평가,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강조했다. 개방과 포용, 그리고 그리스도 정체성에 대한 충실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타종교 이해에 대한 안목을 넓혀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교회 전반을 다룬, 포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 논문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의 정신에 부응하는 한국교회의 미래 사목 방향을 설정하는데 한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1주제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강인철 교수(한신대)
"공의회 사명 깨닫지 못한채 시대에 참여하는 충돌 빚어"
1.학습과 계몽(1965~73)
공의회 폐막 이후 1973년까지는 공의회 문헌을 학습하고, 일부 선각자들이 그 정신을 교회구성원들에게 계몽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공의회 직후인 1966년 5월 한국 주교회의는 ‘바티칸 공의회와 한국교회’라는 사목교서를 발표하여, 누누이 공의회 문헌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사건 체험의 신학, 혹은 공의회 정신의 육화(1974~1987)
1974년 초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로마의 전통적 신심만 지니고 있었을 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다짐한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사명을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전례나 유행어 면에서 공의회는 ‘이미 와 있으되’, 사회참여나 교회의 사회적 역할, 세상과의 대화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공의회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급한 대로 우선 ‘참여’하고 나중에 ‘신학’하는, ‘충돌의 사건’이 앞서고 소박한 반정부 감정을 지속시키고 세련화할 신학적 교리적 근거를 ‘사후적으로’ 탐색하는 양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사회참여의 주역들은 누구인가?
‘암흑 속의 횃불’ 8권에 실려있는 ‘가톨릭계 주요 자료’는 모두 654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교사를 제외한) 외국인이 발표한 문서, 참여 주체가 모호한 문서, 사회참여에 반대하는 주장을 담은 문서 등을 제외한 후 2개 이상의 단체가 공동으로 생산 발표한 문서를, 확인되는 가톨릭 참가단체별로 분리하여 계산할 경우, 모두 663건의 자료를 추려낼 수 있다.
1974~1987년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발언했던 것은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로서 모두 114회였고(전체의 17.2%), 그 다음은 정의구현사제단(107회, 16.1%), 개별 주교들(85회, 12.8%), 개별 사제들(85회, 12.8%), 가톨릭농민회(77회, 11.6%), 교구 사제단(67회, 10.1%)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교구 사제단’도 정의구현사제단 계열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조직으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가장 자주 발언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다 개별 사제들까지 합치면 모두 259회(39.1%)로 압도적 다수를 이룬다.
-어떤 문헌들이 인용되고 있는가?
공의회 문헌 중에는 ‘사목헌장’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다음은 교회헌장,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등이다. 또한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주로 인용된 매스미디어 교령, 그리고 일치운동 교령 순으로 드러났다. 공의회 문헌들을 제외한 사회교리 관련 문헌들 중에는 요한 23세의 ‘어머니요 스승’과 ‘지상의 평화’, 제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총회 문서인 ‘인권과 화해’, 제2차 세계주교대의원 총회 문서인 ‘세계 정의’ 순으로 나타났다. 레오 13세의 ‘노동헌장’과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과 ‘팔십주년’ 역시 자주 인용되었다.
공의회 대한 창조적 해석학, 혹은 공의회의 심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공의회 문헌을 중심으로 한 사회교리의 ‘학습’ 과정은 완성단계로 접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교회의 사회참여를 주도해왔던 세력들은 1981년초부터 개시되어 1984년 11월의 폐회식으로 막을 내린 약 4년간의 ‘200주년 사목회의’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의 사회사목적 역량을 집대성해냈다. 이것은 공의회에 대한 학습의 완료를 뜻할 뿐아니라, 그것의 창조적 해석과 적용 능력의 과시였다는 점에서 ‘한국판 제2차 바티칸공의회’라고도 부를 만했다.
3. 맺음말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1986~1987년은 한국천주교회 사회참여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기적으로 중첩되면서 1987~88년에는 상황이 판이하게 뒤바뀐다. 이에 따라 사회참여의 주체들이 공의회와 맺는 관계방식, 공의회에 대한 해석방식도 판이하게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현재까지 계속 진행중인 것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가톨릭교회됨‘ 혹은 ‘가톨릭성’의 상실로 간주하는 대학의 일부 신학자들이 ‘교회쇄신’의 공동목표아래 점차 결집하고 연대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결국 1980년대 말에 공식적 교계제도에서 강압적으로 퇴출된 광범위한 세력들이 제도권 바깥에서 일종의 ‘천주교 재야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느낌이다.
교회 상층부가 주도하는 사회참여의 성격 또한 크게 바뀌었다. 1990년대 초부터 정평위는 생명운동을, 평협은 도덕성회복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전환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교회쇄신운동’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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