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화의 옷을 입고 주어진
신앙의 역사와 결과물 밝혀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
우리나라를 소개할 때 항상 쓰이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침은 전혀 조용하지가 않다. 온갖 소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아침이 아닌가.
이런 이미지는 구한말 조선을 유람했던 서양 선교사들이 소개한 글에서 유래한다. 그들이 보기에 조선은 정체되고 발전 가능성이 없는,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 계몽되어야할 미숙한 어린아이 같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무지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곳곳에서 전통 문화를 멸시하거나 심지어 이단시하면서 자신의 문화를 종교의 이름으로 강요했다.
이런 사실에 대한 반성이 문화제국주의 담론의 중심 논의를 이루고 있다.
이 담론은 유럽이 자신 이외의 세계를 타자로 설정하고, 그것을 계몽과 미개의 도식으로 이미지화하여 고착시켜온 역사가 현대 문화에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반성이 철학적으로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며 문화적으로는 오리엔탈리즘 담론으로 나타난다.
사실 18세기 이래 우리가 받아들인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화의 옷을 입은 채 다가왔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유럽 문화와 그들의 역사적 결과물까지 함께 수용하였다.
거기에는 신앙의 원체험으로서 역사적 예수에 의한 유일회적 사건뿐 아니라, 그 사건이 이해되고 해석되면서 수용된 역사와 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까지도 함께 담겨있다.
우리 신앙의 현재는 이중적으로 이해된다. 성서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의 계시 사건은 언제나 신앙의 준거틀로 작용한다. 이에 근거하여 역사적 지평에서 이루어지는 실존적 신앙 결단이 수정되고 교정되며, 그를 지향한다. 그와 동시에 이 유일회적인 복음 사건을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와 역사 안으로 현재화시켜가는 과정이 또한 신앙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금 이곳의 구체적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결단하는 실존적이며 영성적인 고백이 신앙이기에 그것은 역사적 지평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믿음과 영적 결단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유일회적 역사로서의 복음 사건과 그에 대한 그리스도 계시의 수용과 문화적 변용의 역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구 문화의 옷을 입고 주어진 신앙의 역사와 결과물을 올바르게 밝혀내어 우리의 문화적 지평에로 현재화시켜야 한다.
그 작업은 때로는 그 문화를 해체하거나 거부하기도 하며, 때로는 전승으로 주어진 신학의 역사를 진지하게 수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역사를 복음 사건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서구문화와 역사에서 해석되고 변용된 것이 곧 우리가 결단해야할 초월적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의 초월성에 대해서는 남김없이 결단하고 수용해야하지만, 문화의 옷을 입고 변용된 역사는 언제나 해석되고 때로는 해체되기도 하면서 거듭 새롭게 수용되고 변용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전승을 배제하고 문화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순수복음이란 말은 근본주의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으며, 복음사건에 뿌리를 두지 않는 문화적 해석은 자칫 신앙을 문화종교로 환원시켜 버릴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작업은 결코 단순히 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와 역사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뿌리내리려는 노력으로 기능한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 그리스도교를 올바르게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해체와 해석의 작업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복음의 진리가 현재화하는 곳은 바로 이 땅의 우리이며, 유일회적인 신앙의 초월성에 대한 체험과 결단은 거듭 문화의 터전에서 드러나고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의 준거틀은 당연하게도 복음 사건에 대한 근원적 체험이다. 또한 그 변용과 수용의 지향점이 우리가 결단한 신앙의 초월성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