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세상이 주목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매력이었다.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은 너무 평범하고 진부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끌어낼 줄 아는 능력이 비범함이 되고, 그런 비범함이 자본과 명예로 이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대 미술이나 소설, 영화, 광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고 있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력,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러한 구도는 성서 묵시문학 안에서 이미 발견되는 부분이다. 보이는 현실 안에 녹아있는 보이지 않는 것, 그 절대자의 이름을 찾아내어 구차한 삶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 묵시문학이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7장은 구원자 ‘사람의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기다림을 담아 두고 있다. 작가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이, 떠다니듯 방황하며 ‘새로운 신’의 도래를 갈구하던 60~70년대 젊은이들의 갈망을 담고 있다면, 다니 7장은 도래하실 ‘사람의 아들’을 기다리며 박해라는 그 무거운 절망을 견디던 당시 독자들의 갈망을 담고 있다.
다니 7장의 개관
성서 묵시문학의 대표적 본문중의 하나인 다니 7장은 묵시문학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 틀을 드러내준다. ①소재들의 상징성(바다에서 떠 오른 네 가지 짐승, 뿔, 기이한 자연 현상등), ②천상집회 장면, ③환시에 뒤따르는 해석, ④해석자의 등장(주로 ‘천사’가 해석자로 등장하며 때로는 ‘천상적 존재’가 해석을 전해줄 때도 있다)이 그것이다.
또한 다니 7장에 등장하는 ‘사람의 아들’ 주제는 다니엘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다니 7, 13의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나자렛 예수님을 지칭한 그리스도론적 표현이라고 주장해왔고, 이 ‘사람의 아들 같은 이’의 오심을 ‘재림’과 연결시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환시의 내용
다니 7장의 이야기는 벨사살 원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연대기적 순서를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이미 6장에서 벨사살 보다 후대의 인물인 메대의 다리우스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 7장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2~14절)에서는 환시의 ‘내용’이 제시되고, 후반부(15~27절)에서는 그에 대한 ‘해석’이 주어진다.
다니엘의 꿈은, 하늘에서 갑자기 ‘네바람’이 바다로 몰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3절). 그러자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오게 되는데 모두 괴상한 형체의 것들이었다. 첫 번째는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였고(4절), 두 번째 짐승은 입에 갈비뼈 세 개를 물고 있는 곰이었으며(5절), 세 번째는 날개와 머리가 각각 네 개씩이나 달려있고, 몸은 표범인 짐승이었다(6절). 마지막 것은 가장 무서운 모양을 한 것이었는데 커다란 쇠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으스러뜨리고 짓밟아 버리는 괴물이었다(7절).
이 마지막 짐승은 뿔을 열개 가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갑자기 작은 뿔이 생기더니 먼저 생긴 뿔 세 개를 뽑아버린다. 놀랍게도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것이 박혀져 있었고, 입이 있어서 말도 하고 있었다(8절). 이후 장면이 바뀌면서 다니엘은 천상옥좌와 거기 앉으신 ‘연세 많으신 분’(9절)을 보게 된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져 나오는 옥좌에 앉으신 분 앞에서 천상법정이 개최되는데, 이 때 네 번째 짐승은 살해된다(11절). 나머지 짐승들 역시 통치권을 빼앗긴 채 얼마간 연명하지만(12절), 이후 ‘사람의 아들 같은 이’(13절)가 구름과 함께 나타나 ‘연세 많으신 분’께로 인도되고 그에게는 전적인 통치권과 영예가 주어지게 된다(14절). 꿈이 끝나자 다니엘은 천상적 존재로부터 이 환시의 뜻을 설명 받는다(15~27절).
이상의 내용을 통해 다니 7장은 박해받던 이스라엘에게, 악한 세력들(네 짐승으로 상징되는)의 종말과 이후에 도래할 메시아(사람의 아들)의 통치를 전하고 있다.
메시아를 기다림
갑자기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이 있다면 그는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다니 7장의 저자는, 비록 박해의 위협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이었지만,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 죽음과 같은 현실을 독하고 무서운 각오로 참아낼 수 있게 하는 존재, 즉 ‘사람의 아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분에 대한 기다림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었다. 기다린 만큼 결실도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그러나 지난 봄과 여름이 간절한 기다림과 견딤의 시절이 아니었다면 결코 아름다울 수도 생산적일 수도 없는 계절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 절절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 가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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