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도, 사람들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그 어떤 것도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요?”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노모와 아내, 4대독자까지 모두 잃은 피해자이면서도 유씨를 위한 탄원서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고정원(루치아노.63)씨. 그는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위해 삶의 이랑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고씨는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면 아마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로 그간의 고뇌를 엿보게 했다.
지난해 7월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각계 요로에 유영철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보낸 이후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행사나 모임이면 어김없이 참석해 사형제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는 그의 논리는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제가 가진 모든 게 제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인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것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고씨가 보통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관용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 건 지난해 7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나면서부터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함께 성당에 나가자”는 생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당을 찾았다. 이젠 그조차도 아내를 통해 마련하신 주님의 안배로 느낄 정도로 고씨의 신앙은 고통 속에서 깊어진 듯 했다.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물기가 묻어나는 눈가를 훔치며 인터뷰에 응한 고씨는 답답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신약성서 필사가 벌써 2번을 넘어섰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빠짐없이 평일미사에 참례하는 게 그의 일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사형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았다고 고백한 고씨는 “사형은 또 하나의 살인”이라는 말로 그간의 고민을 응축시켜냈다.
“내가 사랑하는 나라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책임있는 사람들의 사과 한 마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바라지 않는데 굳이 사형을 집행한다면 또 한번 나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가해자의 죽음이 아닌 피해자들이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늘 새로운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 희망마저 빼앗는 것은 주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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