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치료에 너나없이 한마음
의료진-경영진-원목실, 전인치료에 너나없이 한마음
1965년부터 임상사목교육 시작
병원사목의 전문화 체계화에 기여
교육생도 환자차트 열람하며 사목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이승환 기자】 일반병원사목부 원목자들이 연수기간 동안 방문한 네 곳의 필리핀 병원은 의료시설과 의료진의 수준에서는 한국보다 뒤처져있었다. 하지만 병원 경영진과 의료진, 원목실의 원목자 그리고 임상사목(교육)센터가 하나의 목적, 즉 전인치료를 향해 병원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귀감이 될 만하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공간에 병상 더 늘려서 환자 받을 거 에요”
병동을 둘러보던 한 원목자의 말처럼 필리핀 병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 하나는 넉넉한 공간. 환자들이 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치료받도록 한 병원의 배려다. 병실 입구에 환자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고 담당 의사와 간호사의 이름만 적어 놓은 것도 색다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자 한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그만큼 환자를 생각하고 존중하는 병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평신도 사도직의 실천임을 직원 모두가 공유하고 정기적인 교육을 마련한 병원도 있다. 9월 13일 방문한 산토스 추기경 의료센터(Cardinal Santos Medical Center)에서는 올 한 해 ‘추기경님처럼 환자들을 만나고 돌보자’는 내용의 ‘Cardinal’s Way’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병원 설립자인 산토스 추기경이 오직 환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설립한 것처럼 직원들도 그 유지를 모아 환자들을 돌보자는 것이 캠페인의 취지. 이곳 경영·인사관리 책임자인 엘람(Efrel L.Elam)씨는 “눈에 보이는 병원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구성원이 연민의 정을 갖고 환자를 대하는 것”이라며 캠페인의 의미를 강조했다.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병원의 모습이 전인치료의 외적환경을 조성한다면 실질적인 영적 돌봄은 원목실과 임상사목(교육)센터의 몫이다. 특히 원목실과의 적절한 연계로 실질적인 원목에 나서는 임상사목(교육)센터의 역할은 필리핀 원목이 전문적이고 체계화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병원을 비롯 교도소, 양로원, 본당, 사회복지시설 등지에서 갑작스런 삶의 위기에 부닥친 영혼을 돌보는 사목자 양성 훈련과정인 임상사목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이 필리핀에서 시작된 것은 1965년. 미국인 알버트 달튼 신부에 의해서다. 40년이라는 오랜 역사에 힘입어 현재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임상사목교육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필리핀 마닐라에는 성 루가 의료센터, 국립신장센터, 마카티의료센터 등 세 곳에 필리핀임상사목협회의 인준을 받은 임상사목(교육)센터가 들어서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병원 내에서 실습 위주로 진행되는 임상사목교육은 원목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현지 병원 원목실의 활동을 보다 활성화시킨다. 특히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 등 신학적 바탕을 갖춘 이들을 교육대상으로 삼아 환자들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돌봄이 가능하다.
9월 13일 방문한 마카티의료센터 임상사목(교육)센터에서는 산 파블로(San Pablo) 신학대학교 신학생 10여명이 6주과정의 임상사목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교육과정에 따라 매일 두 차례씩 자신이 담당하는 병동을 찾아 환자를 만난다.
신학교 3학년 크리스티안(34)은 “환자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원목이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제가 된다면 병원사목에 관심을 쏟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상사목(교육)센터에 대한 병원의 신뢰는 원목실 만큼이나 크다. 센터 교육생들은 병동 방문 시 대상 환자의 차트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의견도 적을 수 있다. 차트열람은 원목자나 임상사목교육생이 환자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적합한 영적 돌봄을 준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원목자가 환자의 차트를 보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안향자 수녀(순천향대학교병원 원목실)는 “신학생과 환자가 마치 오랜 친구인 것처럼 반기고 정겹게 대화하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환자방문 소감을 밝히고 “원목실과 임상사목센터가 서로 긴밀한 협조를 통해 환자 원목에 힘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원목은 대다수의 환자가 가톨릭신자인 외적환경 안에서 활성화됐고, 이를 임상사목(교육)센터가 측면 또는 전면에서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임상사목(교육)센터의 활동에 따라 가능해진 전문적인 원목은 환자를 위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병원의 의지와 맞물려 깊은 신뢰와 배려 속에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외부환경과 원목실, 임상사목(교육)센터, 병원을 잇는 순환 고리는 환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원목의 중요성을 병원 전체가 인식하고 환자를 위한 전인치료에 나설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다.
정진호 신부(일반병원사목부 담당)는 “병원과 원목자가 전인치료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협조하며 환자를 돌보는 필리핀의 원목시스템은 원목자 뿐 아니라 한국의 일반병원 경영자들도 보고 배워야 할 점”이라며 “아직은 기초단계인 한국의 임상사목교육을 일반병원 내에서 활성화해 점차 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일반병원 사목이 보다 발전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임상사목교육 지도자 김종오 신부
“원목이 하는 일은 환자의 마음 치료”
“임상사목교육은 사목자가 환자와 함께 ‘있어줌’(Being)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환자가 가장 힘들고 고통 받는 시기에 동반자로서 자리하는 역할을 배우는 것입니다.”
김종오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하는 12명의 임상사목교육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현재 국립신장센터 임상사목(교육)센터에서 현지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1992년 필리핀에서 임상사목교육을 처음 접한 김신부는 이후 장기간의 훈련과정을 거쳐 지도자 자격을 받았다.
김신부는 “현장중심, 체험중심의 임상사목교육은 원목을 실질적으로 돕고 환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활동으로 병원 안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며 “원목실과 임상사목교육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병원 내에서 활성화된다면 환자를 위한 병원의 서비스가 내적으로 보다 성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신부는 “원목은 환자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으로 정서적인 것과 밀접하다”며 “‘당신만 보러왔소’라며 환자를 만나는 여유로운 모습, 기능적이기 보다는 정서적인 삶을 사는 필리핀 원목자와 직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우리 원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일반병원에서 원목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신부는 “원목실은 환자를 위해 있는 것이고 원목의 기본은 환자를 돕는 것이라는 인식이 병원 내에 자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전인적인 환자 치료를 위한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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