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관에서 사목한지 이제 4개월째, 복지관의 여러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며 바삐 움직이시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진지한 눈빛에 구슬땀까지 흘려가며 배움의 하루를 보내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일출보다는 일몰의 아름다움을 확신한다. 팔십이 넘어 구부정한 허리에 코가 땅에 닿을듯한 안나할머니는 매일 복지관에서 한글공부용 네모칸공책, 다라질대로 다라진 지우개와 몽당연필을 들고 다니시며 끊임없이 읽고 쓰기를 반복하신다.
주위 어르신들이 저 할머니는 ‘요새 사람들 같았으면 서울대 갔을거요’하신다. 주님의 기도를 할머니께 복사해드리고 한글자한글자 읽어드리며 나의 노년에 대한 상념에 빠지게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은 남성 73.4세, 여성 80.4세로 전체적으로는 77.0세에 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과 앞으로 살아갈 기간이 같은 나이는 남자 37세, 여자 41세로 계산됐다.
내 나이 37세니 딱 절반을 살았고 하느님의 허락으로 사고나 병고없이 산다면 이제 딱 살아온 만큼의 기간이 나에게 주어져있는 것이다. 계산기를 가져다가 두드려보니 날자로 환산하면 13,505일, 시간으로 환산하면 324,120시간 이다. 이 시간 중 삼분의 일은 잠자는 시간. 실제로 깨어있는 날은 9003일 시간으로는 216,080시간. 순간 긴장감이 맴돈다. 노인들을 서비스의 이용자로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내가 나의 노년을 잉태하고 있으며 지금 이 시간도 급속한 속도로 죽음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노년을 아주멀리 있는 나와는 당장 상관없는 일로 생각한다. 잉태가 없는 출산이 없듯 아무런 준비없이 노년을 맞이하게 되면 가족들도 본인도 당황하게 된다.
항간에서는 노년 준비를 위한 ‘십억만들기’를 이야기한다. 정말 십억만 있으면 행복한 노년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노년준비는 단지 경제적인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완성을 준비해 가야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아무것도 모아 두지 않은 네가 늙어서 무엇을 찾을 수 있으랴? 백발노인으로서 분별력있고, 원숙한 사람으로서 남에게 좋은 충고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랴? 노인이 보여주는 지혜와 지위 높은 사람이 주는 뜻 깊은 충고는 지극히 훌륭한 것이다. 풍부한 경험은 노인의 명예이며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참된 자랑이다”(집회서 25, 3~6).
신앙은 성숙한 노년의 가장 좋은 동반자다. 노을보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주님과 더 친해지는 연습, 가족과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는 것,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사제로서 노년준비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마음먹는다.
박공식 신부 〈나주 노인복지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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