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그러나 아직 완성 안돼”
▨ 수상 소감/ 본상 수상자 조규만 신부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 가운데 73.2%가 신앙의 이유를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세상에서 마음 편하고 건강하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명이고 복음선포의 핵심 주제였던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도 여전히 핵심사명이며 첫 번째 과제임을 상기시켜드리는 것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활발한 연구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이뤄졌습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듣게 했습니다. 이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동의어로 사용된 ‘하늘나라’라는 개념이 한자 문화의 ‘천국’ ‘천당’으로 표현되며 ‘죽은 다음에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현재와 밀접합니다. 예수님은 악마를 추방하고 병자를 고쳐주고,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는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도 포함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는 바로 그런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서‘부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만’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웰빙’ 바람이 여기에 깊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건강하고 마음 평안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듯합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선포는 미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보다도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아직’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한 알의 밀알이 ‘이미’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완성은 여전히 기다려야 할 미래의 실재입니다.
완성으로서의 미래는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세상에서 마음의 평안과 건강이 아니라, 진정한 웰빙 곧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란 하느님이 임금님처럼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 드리는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느님 나라가 설 수 있는 장소입니다. 신앙만이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입니다. 기도는 대화하는 신앙이요, 신앙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신앙 없이 기도 없이 하느님 나라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학연구는 제게 큰 선물”
▨ 수상 소감/ 연구상 수상자 황종렬 박사
저는 지금까지 신학을 연구할 수 있는 것 자체를 선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은 선물에 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양한모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사명의 한 방향은 성직주의의 극복, 다른 하나는 평신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구현을 겨냥합니다. 예컨대 선생은 “한국 신도들은 성직자 중심주의에 의거한 권위주의에 대하여, 신약성서가 제시하는 봉사직으로의 신도사도직을 확립할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모험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왜 우리 천주교 신도는 이렇게도 어린애같기만 한가? 왜 사제들에게만 의지하려고 하는가? 신도의 거룩한 소명을 과소평가하고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가?”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신도들의 사명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무기력함, 신도의 무기력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백성인 신도 자신이 어떻게 진실한 교회의 사도직에로 탈출하는가가 현대 한국 신도의 근본과제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20년 전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교회는 동일한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양한모 선생의 이런 비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현대 교회는 신도가 소외되지 않은 형태의 새로운 신앙 해석과 실천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의회 폐막 40년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정신의 뿌리내림과 체화는 부족합니다.
양선생은 또한 한국 교회의 토착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인 선구자이십니다. 그분은 기회 있을 때마다 동아시아의 종교와 사상 전통을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 전통과 대면시켜 창조적으로 상호 형성 관계를 열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나눠 주었습니다 .
그분의 이러한 토착화 열망을 공유하면서 그동안 한국 신학의 비전을 형성하는데 동참해 왔습니다. 이번 상을 그분이 가신 그 순천의 길을 나름대로 따라 걸어온 것을 격려하고 앞으로도 이 길을 지켜갈 것을 당부하면서 마련해주신 영성의 노자로 감사히 받고자 합니다.
“하느님 나라 연구 총망라”
“신학 토착화에 부단한 노력”
▨ 심사평/ 대구가대 대신학원장 하성호 신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 내용이 ‘하느님 나라’이다. 이는 기도뿐만 아니라 신학에 있어서도 언제나 중심 주제이다.
가톨릭학술상 수상작인 ‘하느님 나라’의 저자인 조규만 신부는 복음 선포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검토하는데서 시작해 신학의 여러 분야와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찰을 통해, 저자는 신앙과 하느님 나라의 관계를 일깨우고, 기도와 하느님 나라의 관계를 파악하도록 이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구원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가 무엇이며,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이 저술이 더욱 돋보이는 점은 ‘하느님 나라’라는 복음 핵심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는 것이다. 즉 저자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구약의 입장(제1장), 신약의 입장(제2장), 그리스도론의 입장(제3장), 교부문헌의 입장(제4장), 교의신학의 입장(제5장) 및 영성신학의 입장(제6장)까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입장과 고찰을 총망라해 다양한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여러 학문 분야들이 지나치게 분화되는 경향과 서로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상실되고 있는 안타까운 학문 풍토 안에서, 동일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영역의 관점을 찾아가는 방법론(methodologia interdisciplinaris)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저술이라 하겠다.
연구상 수상자인 평신도 신학자 황종렬 박사는 한국 교회의 아직 척박한 신학 연구 환경 속에서, 특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신학에 매진하는 노고를 마다 하지 않는 많지 않은 평신도 신학자로서 오랫 동안 신학의 토착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한국적 신학의 모색이라는 학문 방향에서 신학에 접근하려는 수상자의 자세는 “한국 교회의 신학은 한국적 전통과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에 모두 충실해야 한다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누차 되새기는 그의 말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상자는 여러 논문과 저술을 통해 한국적,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에 모두 충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수상자의 이런 신학 자세와 접근은 한국 교회의 ‘토착화’에 필요한 신학 연구와 맥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수상자가 꾸준하게 이뤄내는 적지 않은 학문적 성취, 아울러 연구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일선 사목의 현장에 참여해 이론과 실천을 함께 모색하려는 노력에 비추어 볼 때 평신도 신학자로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게 심사위원회의 종합적인 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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