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문화 이해 노력 부족”
■ 제4주제 :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천주교회의 전례토착화 - 김종수 신부(가톨릭대 교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장 먼저 ‘전례 헌장’을 반포함으로써 전례를 연구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전례 쇄신을 통한 신자 생활의 쇄신과 영성 생활의 진보를 기대하게 되었다. 각 민족은 공의회가 천명한 대로 로마 예법의 예식들을 자기 민족의 고유한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들도 함께 기울였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적응의 노력들을 ‘토착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토착화의 신학적 원리와 유형적 구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토착화’는 복음화의 핵심 과제가 되어, 자기가 사는 지역과 문화의 복음화를 이루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 사명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전례의 새로운 적응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후의 만찬이다.
토착화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새로운 주제처럼 부각된 것은 교회안에 다원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여러 민족 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토착화는 어떤 편리함을 이유로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 말씀의 강생을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 계속하는 교회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강생의 신비는 토착화의 신학적 원리이다. 죄를 제외하고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 백성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종교를 따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은 말씀이 한 유다인, 선택된 백성의 한 구성원이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보편적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유다의 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점에서 한 명의 유다인이셨다. 강생의 역사성은 그분이 마음과 정신, 살과 피로써 그 백성과 동일시되었음을 가리킨다.
결정적으로 강생의 신비는 구원 업적을 수행하는 교회의 역할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교회를 통해서 반복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이 실행되고, 그리스도께서는 활발하게 세상 안에 현존하기를 계속하신다. 다양한 민족 안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편성의 확장이다. 사람이 되신 것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는 교회가 자신이 살고 있는 백성의 문화적, 사회적 조건들을 취할 때마다 다시금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착화는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강생의 신비가 요구하고, 꼭 성취해야 하는 신학적 명령이다.
전례 적응을 유형적으로 구분할 때는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accomodatio’로서 전례 회중에 의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실행되고 있는 전례 거행의 요소들을 상황에 따라 더욱 효과있게 변형하는 것이다. 이 양태는 문화적 적응과 필연적으로 관계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유형은 문화의 본성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로마 예식이 가지고 있는 표현 방식을 변경하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로마 예식이 변경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토착화의 양식을 ‘acculturatio’라고 부른다.
세 번째 양식 역시 문화의 본성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비추어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식을 재해석하고 형태를 바꾸어 로마 예식으로 거행하는 것이다. 이 토착화의 양식을 ‘inculturatio’라 한다.
네 번째 양식으로 ‘transculturatio’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지역문화 안에서는 양태도, 정신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대로 그 지역 문화 안에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양식을 ‘문화 전이’내지는 ‘문화이식’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는데, 이것은 토착화 양식 가운데 지역민에게 가장 낯설고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양식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화적 토착화 양식은 문화의 요소로서 민족의 특성과 그 민족의 표현 양식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로마 예식과 관련해, 로마 예식이 지니는 특성과 표현 방식 그리고 예절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문화의 전례적 섭취 내지는 지역 문화 예식으로의 대체는 로마 예식과 모순없이 양립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들이 로마 예식의 기도문이나 예절적인 요소들을 대체하여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화의 전례적 섭취’는 로마 예식의 형식적, 신학적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고유문화에 관심을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한국의 고유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톨릭 예식에 반영한다는 것은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여러 변경 사항들은 문화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법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들이다. 그나마 ‘상장 예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도 이 사안들에 대하여 논의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도좌의 허용 기준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제 전례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고유한 문화적 요소들을 교회 예식에 많이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불교·유교·무속 문화는 한국교회 성장의 토대”
■ 제5주제 : 한국교회의 전통 종교 이해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 황종렬 박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한국교회는 공의회 이전까지는 시간적으로는 20세기에 존재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성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봉건적 내지는 전근대적 속성들을 노정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계기로 작용한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현대 세계에서 이룬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공의회에 참여하면서 세계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익히고 이를 체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사회적으로나 영성적으로나 종교 문화적으로 자신의 현대성을 형성해 갔다.
정신과 영을 어떻게 나눌 건가?
한국교회는 발전의 역동성과 미래의 역할과 관련하여 세계 교회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이전에 일정하게 받는 교회 단계에서 나누는 교회 단계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는 한국교회상과 연계되어 있다.
이때 깊이 성찰할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을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과 장소, 인력의 지원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런 것 등을 지원하는 단계에 머문 채 영을 나눌 수 없다면, 지원하는 역할에서 곧 피로를 느끼게 되기 쉽다. 영을 움직이게 하고, 영을 돌게 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나눔 가운데 하나가 영성과 문화이다. 한국가톨릭교회의 고유하고도 주체적인, 곧 창조적인 정신과 영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때 세계 교회가 비로소 한국교회의 존재 이유를 납득하게 될 것이다. 한국 고유의 정신과 영성 비전을 한국인의 종교 심성과 통합하여 제시하면서 동아시아 사회 속에서 복음화와 문화와의 창조적 대화의 지평을 열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6세기 말부터, 특히 17세기 초부터 중국을 매개로 서학과 교류하기 시작한 이래 18세기 말에 교회가 서면서 한국교회는 동아시아 불교와 유교, 무속 문화를 토대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다종교 상황을 삶의 자리로 갖고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모호하고 불명료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 지평의 조우와 대화야말로 한국가톨릭 신앙 체계의 독특성을 창조적으로 형성할 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는 이전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 다종교성과 다문화성을 토대로 존립한다는 점에서도 이 사실은 매우 주목된다.
전통종교 이해의 쇄신 방향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 이해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에서 한편으로는 연구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하고, 실천 면에서 내실을 이루지 못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물론 몇몇 연구 기관과 신앙 교육 단체들이 전통종교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심화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분투해 왔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이제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종교의 존재 이유를 구현하는 데 역점을 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가톨릭적 정체성이 한국의 전통종교와 문화의 유산을 만나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다스림을 준거로 한 창조적 변형을 향하여 보다 더 역동적으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생명운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교회의 세가지 내적 노력
한국교회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통을 민족적 종교 문화의 지평과 통합시켜 평가,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것이 한국교회가 자기의 전통종교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 과제를 구현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 교회 내적 노력이 요청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주체적 신앙 실천 역량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전통 종교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화란 한국적 정체성을 그리스도교적 정체성과 통합할 수 있는 주체성 위에서 비로소 역동적으로 수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제는 다시 끊임없는 교회 구조의 쇄신을 요청하는데, 교회 구조의 건강없이는 지역적 내지는 민족적 전통종교들에 대한 개방과 포용, 연대란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허상이기 쉬운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전통 종교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그 주체들과의 역동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신학 전통을 보다 더 충실하게 소화하여 체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스도교 신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과연 어느 정도로 종교 대화를 수행할 것인지, 어느 정도로 토착화를 진전시킬 것인지 확신을 갖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2000년 전통의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을 단순히 사목의 도구화와 테크닉화하는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존재의 뿌리에 닿게 하는 형태로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요청된다. 여기에 성공할 때야말로 실제로는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사목을 역동화할 뿐만 아니라, 전통종교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그 주체들과 대화를 창조적으로 성숙시켜서 민족의 영성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이중의 풍요를 성취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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