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이젠 바닥을 쳤나보다. 다니엘서 10장에 대한 원고를 쓰려고 끙끙대 보았지만 이전에 썼던 내용과 비슷한 얘기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꿈속에서까지 원고를 써보았는데, 거기에서도 신통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암이나 교통사고보다 사람을 더 많이 해치는게 두려움이라더니 이제는 원고 쓰기도 두려움이 되어 버렸다(엄살 좀 보태서…). 그런 이유로 이번 주 시작하는 말은, 사순시기는 아니지만, 굶는다.
10~12장: 거대한 역사적 보고서
다니 10~12장은 하나로 형성된 거대한 단일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레스왕 3년, 한 천상적 인물에 의해 다니엘에게 주어진 환시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부분은 고대 중동 지방의 ‘역사 개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실제적 상황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페르시아 시대와 그리스 알렉산더 시대를 거쳐 안티오쿠스 4세의 폭정과 그의 종말까지의 역사가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다. 다니 10~12장이 일반 역사서술에 비해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상징 언어, 즉 전형적인 묵시문학적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히 다니 10장은 천상적 인물과 다니엘의 대화로서 앞으로 계속하여 진행될 역사적 계시(10~12장)의 ‘서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내용
전형적인 묵시문학 작품에 해당되는 다니엘서 후반부(7~12장)는 전쟁에 대한 언급으로 진행된다. 네 마리 짐승과의 전쟁(7장), 숫양-숫염소와의 전쟁(8장), 70주간 동안의 전쟁(9장)에 이어 이제 10장에서는 천사들간의 전쟁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 10장은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인 고레스 3년, 다니엘이 3주간의 고행 중에 받은 묵시를 기술하고 있다.
이 환시는 히브리 성서에서 ‘고레스 3년’에 주어졌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칠십인역에서는 고레스 1년으로 제시되고 있다. 연대기적 부정확함의 문제는 앞으로 소개될 내용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라기 보다, 이러한 여러 사건들 뒤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의도를 ‘신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암시한다.
다니 10장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다니엘을 ‘벨트사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니엘서의 마지막 환시인 이 부분(10~12장)에서 다니엘을 전반부에 등장한 이름 ‘벨트사살’로 부름으로써, 이 책의 마지막과 처음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편집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환시는 천상적 존재가 알려주는 ‘큰 전쟁’에 대한 것으로 천상적 존재는 다니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극기하기로 결심한 첫날부터’ 하느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음을 전달한다(12절). 이 전쟁은 페르시아의 장수와 천상적 존재 자신이 벌이는 싸움이라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미카엘이 그를 돕기 위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제시된다. 그는 ‘진리의 책에 적힌 것’을 알려주고, 이스라엘의 제후 천사 미카엘 말고는 적들을 대적할 이가 없음을 분명히 강조한다(21절).
신학적 의미
다니 10장의 저자는 그들의 역사가 이미 ‘진리의 책’에 적혀져 있는 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의무는 그저 이 길을 수용하고 걷는 것뿐임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한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 역사를 움직여 가고 계시고, 따라서 하느님께 성실한 태도를 일관하는 것은 현재의 폭력적 매커니즘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묵시주의적 투쟁방식이라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정의로우심을 믿으며, 그 분의 최후 승리를 확신할 때, 현재적 불의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망가지지 않고도, 혹은 비열한 타협을 자청하지 않고도, 폭력의 소용돌이를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묵시문학 저자들이 제안했던 ‘삶의 질서’인 것이다.
기억과 극복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결국에는 그걸 알아버리고야 마는 것, 그것이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별 도리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오늘의 모욕을 기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아침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누구를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결코 서먹하지 않게 시작하는 것은 인간 모두가 어려워하는 삶의 과제일 것이다.
모욕을, 분노를, 공포를 견디는 힘, 그것은 이 모든 현실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만 가능하다. 그러니, 인생의 낯선 시간도 우리는 견딜 수 있다. 하느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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