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 회심 막으려고 5대손까지 특별 감시
루이조쿠(類族)라는 이 배교자손 감시제는 배교자의 자손들이 기리시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검색제도이다. 남자는 5대까지이고 여자는 3대까지의 출생, 혼인, 여행, 사망, 분출, 이전, 개명, 이혼, 삭발 등 생활 전반을 특별 감시 하에 두었다.
1687년부터 제도적으로 7월과 8월에 사원을 통하여 촌장이 막부 행정관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리시탄의 자손들이 회심할 가능성은 정치적 제도로 엄중히 폐쇄되어 버렸다. 그 예를 가마쿠라(鎌倉) 기리시탄에서 몇가지 들어보면, 가마쿠라의 기리시탄은 힐라리오 마고(孫) 부부가 가르베스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에도 감옥에 투옥 되었다가 1623년 에도 대 순교 때 순교하였다. 이들이 순교한 후 그 자손들이나 신심회 회원들은 가마쿠라의 고부쿠로야 무라(小袋谷村)에 숨어들어 조용히 남모르게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이 자손들도 여러 가지 검색을 받아가면서 불교신자가 되어 있었지만 루이조쿠에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배교 기리시탄 자손의 병사 보고서 : 가마쿠라의 배교자 기리시탄 에다(穢多) 구지로의 적남 사뵤에(佐兵衛)의 처 쿠라가 3월 13일 66세로 병사하여 광조사에 두었음을 보고함. 1722년 7월’
배교자 기리시탄 3대 자손의 처가 병사하였음을 보고하는 기록이다. 사뵤에는 기리시탄을 배교한 지 3대째이다. ‘광조사에 두었음’이라는 것은 기리시탄 자손들이 사망하였을 경우, 마음대로 장사지내지 못하였고 소금으로 재어서 사원에 놓아둔다. 해당 관리가 나와 시체검사(사망자 몸에 기리시탄의 표시가 있는지)를 하고서야 주지에 의하여 불교식으로 장사를 지내고 그 절 안에 묘소를 두게 하였다.
또 에다(穢多)라는 것은 그 당시 신분 중에서 가장 천한 자를 일컫는 것인데 기리시탄에게는 ‘에다=穢多=더러운자’ 또는 ‘쿠로진=黑人=더러운자’(cruz=발음이 십자가와 같기 때문에 기리시탄들은 즐겨 받아들였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 본인 스스로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에다의 신분이 되어 많은 사람의 근접을 피하여 고발을 면하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이 외에 10월 23일의 배교자 자손 장부에는 에다 사뵤에의 아들 도라노스케(虎之助)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10월 12일 집을 나간 것을 보고하고 있다.
‘에다 도라노스케 분출보고서 : 배교자 자손 에다 사뵤에의 아들 도라노스케가 10월 12일 분출하였다. 이에 신고 함. 가마쿠라 고부쿠로야 마을’
도라노스케는 배교자 기리시탄의 4대 째 자손이다. 특히 분출자는 끝까지 추적하여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철저히 찾게 하였다. 수십 차례 보고서가 오고간 문서가 남아있다.
박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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