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겨라”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세상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산이 아름답습니다. 제때에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이제 남은 잎 마저 저마다의 색깔로 곱게 물들여 내어주는 가을 나무를 보며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정성을 다해 소중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마음 갈라짐 없이 첫 마음을 간직하고 오롯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인생은 곱게 물들여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가을 나무처럼 아름답습니다.
몇 년 전에 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이 생활하셨던 아르스의 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구사제인 저는 평범한 본당신부로 사시다가 성인품에 오르신 비안네 신부님이 사셨던 곳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한 사제의 아름다운 삶을 제 마음 속에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사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신학 공부를 잘 해낼 수가 없었고 결국 라틴어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신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사제가 된 비안네 신부님이 발령 받은 곳은 아르스 본당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편안한 생활에 젖어 신앙에는 무관심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단순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론을 통해 하느님께 되돌아왔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그의 사랑과 성덕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신부님의 허름한 집무실에 걸려있는 하루 생활 계획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기도와 미사’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고해성사’ 그리고 4시간 정도의 수면이 전부였습니다. 아르스 성당의 고해소에 아직도 보관되어있는 무릎 받이가 닳고 닳아서 움푹 패여 있는 장궤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왔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처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사제와 자신의 만족 보다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절실한 때입니다.
요즘들어 교회 안팎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쇄신의 요구가 간절하게 들려옵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할 사람들에 대한 염려의 소리가 커집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고, 점차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본질적인 가치들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많은 부분 세속화됨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상실해 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안일함과 타성에 젖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은 묵묵히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사제인 저로서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회초리를 맞는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위선자들을 향하여 회초리를 드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꾸미고 사는 인생, 스스로 높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참된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 진다”는 말씀은 모든 관계에서 기득권을 누리려는 저와 같은 사람들을 향하여 들려주시는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그 분 앞에 나서는 마음은 부끄럽고 아프지만 그분의 회초리가 사랑이 되어 내 종아리를 내치실 때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제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바오로 사도의 열정이 우리 마음을 곱게 물들여,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가을 산처럼 저마다의 고운 색깔로 아름답게 물들어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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