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역사’이다. 역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우주를 지어내시고 이룩해 가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소비에트 연방이 그런 방법으로 무너지리라고는, 그리고 북한 배우가 우리 방송의 광고스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결국 역사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어 가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내일, 아니 5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을지,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근래 있었던 파키스탄의 지진, 발리 폭발사고 등은 그러한 삶의 진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호화로운 휴가를 지내는 중에도 ‘5분 후의 죽음’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니 11장은 근동 지역의 역사 전개를 통해, 모든 역사는 하느님의 원하심과 그분의 계획대로 이루어짐을 제시해주고 있다.
개관적 특징
다니 11장은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시리아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에 이르는 근동지역의 역사를 상징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일종의 ‘역사 보고서’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이름들이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서술과 묘사를 통해 당시의 독자들은 쉽게 그 내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구성
본문은 하나의 사건을 일반적인 기승전결 기법으로 서술하지 않고, 매우 다양한 사건들을 열거함으로써 이를 통합하는 메시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왕들의 등극과 함께 근동의 패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매우 길게 묘사하고 있는 11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페르시아 시대(2b절) -> 2) 알렉산더의 등장(3~4절) -> 3) 프톨레미 왕조의 발전(5~6절) -> 4) 이집트와 시리아의 전쟁(7~9절) -> 5) 안티오쿠스 3세(10~19절): a.제1차 이집트 원정(10~12절) b.제2차 이집트 원정(13~15절) c.전성기(16~18a절) d.몰락(18b~19절) -> 6) 셀류쿠스 4세의 짧은 통치(20절) -> 7)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21~45절): a.등극(21~24절) b.제1차 이집트 원정(25~28절) c.제2차 이집트 원정과 유다인 박해(29~35절) d.전성기(36~39절) e.최후 전투와 죽음(40~45절).
박해에 대한 대응: 마스킬림 프로파간다
위의 여러 사건들을 모두 다 설명하기에는 지면의 한계가 있어, 그것들 중 저자가 가장 부각하려 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선택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박해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영합’과 ‘투항’의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한 무력적 대응도 있었다(마카베오 항쟁의 경우). 그러나 다니 11장의 저자는 ‘마스킬림’이라는 이들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이들이 보여주었던 비폭력적 대항을 가장 고무적인 자세로 제시하고 있다(32~34절). 그들의 대사회적 기능은 정신 의식의 고취(계몽)와 연관된 것으로서, ‘많은 사람’(33절)들이 그 시대의 징표와 사건들을 통한 하느님의 뜻을 ‘알게’하도록 하는 것과 이 앎을 통한 비폭력적 대항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고통스러운 사건들은 하느님의 손에서 조정되는 사건들이고, 이미 그 결과는 하느님과 그분께 충실한(의인들) 이들의 승리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함으로써, 지혜롭게 이 시련의 시간들을 ‘견디어내자’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 나가는 역사의 과정이므로, 인간 측의 무력저항이나 물리적 책략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강한 신앙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려는 자세만이 필요한 것이다(35절). 이러한 입장은 ‘순교’에 대한 절대적 지지로 발전하고, 이에 대한 보상은 이어지는 다니 12장에서 ‘부활’이라는 주제로 제시된다.
삶을 완성시키는 방법
스스로를 중대한 인물로 여기는 과대망상과 타인들에 의해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스스로를 ‘신의 나타남’(에피파네스)이라 칭하며 남의 목숨을 유린했던 안티오쿠스 4세와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수호하려했던 마스킬림의 대비를 통해, 저자는 ‘단 한 번에 삶을 완성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갈등과 흔들림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이지만, 그래도 구원과 자유를 향해 나가길 원한다면 길은 단 하나, ‘자기희생’이라는 과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때로는 남을 위해 상실의 고통을 선택할 수도 있는 숭고한 희생 때문은 아닐는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