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여성 교육에 헌신
현명하고 자비로움으로 빛을 발하며
타락한 죄인들위해 속죄와 금욕생활
15세기 후반 16세기 초 이탈리아는 새롭게 일기 시작한 사조에 전통적인 종교적 삶도 문을 열만큼 격변의 시기였다. 고도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였고 귀족들은 이같은 흐름에 맞춰 학문과 예술을 지원했다.
알렉산더 6세 같은 교황도 뛰어난 건축물 건립에 많은 후원을 쏟았지만 한편 그런 관심들과는 반대로 신자들에 대한 영적지도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들은 멀어져 갔고 또 시민들의 윤리와 생활 방식도 느슨해지고 문란해져 가는 양상을 보였다.
뜻있는 평신도들은 교회가 어렵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뻗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우르술라 수녀회 창립자인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1470/1474~1540)도 당시 사회 안에 뛰어들어 청소년 교육, 특히 여성 교육에 헌신했던 사람이다.
우르술라회 창립
1470년 1474년 사이 가르다 (Garda) 호수 서안 데센차노(Desenzano)의 지방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안젤라 메리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5살 무렵부터 안젤라에게 성인의 삶을 들려주는 등 신앙 교육을 시켰고 그녀 역시 성인전을 즐겨 읽으며 거기서 성인들의 생활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안젤라 메리치의 복자품 심의 과정에서 나온 증언에서도 “그녀는 5살 되던 무렵에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성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벌써 그들과 같은 영적, 관상적 삶을 살고 싶어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고 있다.
13세 때 첫 영성체를 한 후 나름대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했던 안젤라는 이후 부모님과 쌍둥이 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살로(Salo)에 사는 외삼촌 집으로 보내져 5년여 동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외삼촌이 속한 비안코시 가문은 다소 하급 귀족이었고 그런 만큼 이전의 부모님 집에서와는 다른 형태의 삶이었다. 또 살로 지역은 유명한 휴양지였기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도덕적이고 향락적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안젤라는 깊은 상처를 받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산에 올라가 조용히 기도하곤 했다.
또 프란치스코 재속회(3회)에 가입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했다.
1497~1498년경 안젤라는 ‘브루다초의 계시’(Vision di Brudazzo)라 불리는 놀라운 일을 겪었다. 어느날 브루다초의 들판에서 죽은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던 메리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한 동정녀들이 나타났는데 그들 중 죽은 언니나 친구로 여겨지는 한 처녀가 ‘브레시아에 선택받은 동정녀들의 모임을 만들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했다. 이 계시는 그녀의 마음에 강하게 각인되어졌고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20살이 되어 데센차노로 귀향한 메리치는 그곳에서 1516년까지 살았는데 프란치스코 수도회 장상들에 의해 브레시아 지방으로 보내지게 됐다. 당시 브레시아 지방은 신앙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곤궁함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자녀들은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지냈다. 성직 수도자들조차 타락한 생활상을 보이고 있었다.
메리치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죄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속죄와 금욕 생활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종교 교육을 하였다. 또 교육만이 가정과 사회를 그리스도화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 그는 모든 계층의 소녀들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주었다.
일상적인 가사 노동 중에서도 기도와 속죄 생활로 내적 깊이를 더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움, 현명함, 모성적인 자비로움을 보여 빛을 발했던 안젤라는 그곳 사람들에게 점차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됐고 ‘브레시아의 안젤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우르술라회’ 창설
그녀가 수도회 설립을 준비한 것은 50세가 넘어서였다. 1525년 교황 글레멘스 7세가 특별 성년을 선포하고 순례를 권장했는데 이때 로마를 방문한 안젤라는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을 밝히며 교황의 허가를 청했다.
이후 1530년 메리치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결성했고 1532년 바랄로 산으로 성지 순례를 가서는 보리수나무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들을 봉헌했다.
1535년 28명으로 늘어난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며 메리치가 만든 규칙에 따라 3대 서원을 함으로써 ‘우르술라회’를 공식 창설했으며 안젤라는 초대 원장으로 선출됐다.
초창기 회원들은 각자 살던 집에서 머물며 사도직을 수행해 갔다. 평범한 모습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봉사했고 이웃 사랑에 헌신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종교적인 진리를 가르치며 올바르게 이끄는 일에 몰두했다.
우르술라회를 비롯 안젤라 메리치의 정신을 따르는 수녀회들은 계속해서 퍼져나갔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 교회 안에서 교육 문화 선교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안젤라 메리치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했으며 1807년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시성됐다. 이때 ‘우르술라회의 창립자’라는 칭호가 부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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