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담긴 모순과 한계를
바르게 성찰하는 지성 필요
문화를 통한 영성의 발견이란 두 개의 날을 지닌 칼과도 같다. 인간이 자신을 실현해가고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는 터전이 문화이기에 영성은 이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는 그 때의 지배적 이념과 대중적 이해에 메몰되어 있기에, 그 문제를 밝혀내지 못할 때 영성의 길은 자칫 현실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자리한 문화는 어떠한가. 현대의 문화는 철저히 서구 근대가 이룩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근대는 인간의 기본권리를 확인하고 개체로서의 자율성을 부여한 것, 합리성의 원리를 정립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럼에도 근대는 자연을 객체적 대상으로 만들고 인간을 그 세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오늘날 문화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폐해와 모순을 낳았다.
근대성에 의한 현대 문화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먼저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대중문화는 현대자본주의의 내적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 근본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 체계는 반인간적이며 영성의 세계와는 함께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수단이 되어야할 경제가 삶의 궁극적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내적 원리를 보지 못하는 무비판적 사고체계 때문에 현대 문화의 극심한 모순과 문제점, 비인간적인 속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무비판적으로 찬사를 보내는 과학기술 역시 이러한 체계에서 태어났으며, 그것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과학주의’는 결국 현대문화에 인문정신과 초월적 가치를 망각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릴케 같은 시인은 현대를 “신이 떠나 버린 궁핍한 시대”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근대의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이 결코 현대문화에 대한 냉소나 거부, 또는 지적 허무주의에 빠져들어 현실을 도피하거나, 탈세속주의의 경건함으로 빠져드는 것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문화를 떠나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현재를 정확히 바라보면서도, 문화에 담긴 모순과 한계를 올바르게 성찰하는 지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없이 지금 이곳에서의 영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현대 문화에 담긴 문제의 기원과 근대성의 모순을 밝혀낼 학문적 성찰의 작업이 절실하다. 문화세계를 영성으로 방향짓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성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때 그 공동체는 나아갈 길을 잃게되고, 의미의 공허함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인문정신에 대한 홀대는 사실 현대문화의 특징이며, 역설적으로 근대가 초래한 문화적 결과이다. 오늘날 대학은 자본의 창출을 위한 수단이 되고 지식은 컴퓨터에 담긴 정보처럼 팔리고 있다. 그 안에서 학자는 세계와 역사의 방향을 상실하고 다만 전문적 지식만을 제공하는 지식상인으로 전락하였다. 이럴 때,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그곳이 무얼 의미하는지 누구도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된다. 이제 영성조차 내밀한 신심의 세계로 국한되게 된다. 인문정신을 경건함만으로 보충할 수는 없다.
방향 잃은 생명공학의 질주에 생명의 존엄성이 진정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도 인문정신에 근거한 엄격한 학문적 성찰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맹목적 논리를 현실의 경제적 안락함과 동일시하는 피상적 이해를 지성적 반성없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전문성을 상실한 눈먼 진보와 근대화를 팔아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무이념의 저급함에 누가 올바른 방향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초월에 대한 결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전 존재론적 투신이며, 그것이 이루어져야할 문화의 자리를 교정하는 작업은 지성의 노력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영성은 결코 인문정신과 지성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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