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명은 ‘생명의 복음’ 선포”
과학은 인권과 참된 선익에 봉사해야
교황청, 가톨릭의료기구간 연대 지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수호하는 일은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소명이다. 주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는 모든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인간 생명의 권리를 강조하며, 교황청과 보편교회, 각 지역교회가 모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대담 이창영 신부-
교황, 인간 존엄성 수호
-이창영 신부 :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별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항상 강조해오셨습니다.
▲교황대사 : 교회의 신앙과 교리 수호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소명일 뿐만 아니라,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시절의) 라칭거 추기경의 직무였습니다. 신앙을 수호하는 일은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가르치는 직무의 핵심이므로, 이를 두고 보수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주장입니다.
이 직무는 인간과 우주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요구합니다.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인류의 선익을 위한 인간 지식, 과학과 문화의 진보에 대한 이러한 개방성의 탁월한 모범입니다.
그리스도교적 전통은 한마디로 인간 존재를 자연의 부산물이나 ‘우연’이 아니라,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한”(창세기 1, 27)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우연하고 무의미한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생명이 거룩한 것, 다시 말해서 생명은 하느님께 유보된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본질 자체에 뿌리박고 있으며, 인권은 여기에서 그 권위를 부여받는 것입니다. 모든 인권 중에서 으뜸은 생명권입니다. 제5계명은 살인을 금합니다. 살인은 그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이르는 커다란 죄악입니다. 살인은 계시 뿐만 아니라, 인간 이성에 의해서도 잘못된 것입니다. 존재의 첫 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한 인격체로서의 권리들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 중 하나가 생명권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담과 이브의 하느님께 대한 첫 번째 반항, 불순종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원죄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악의 뿌리(창세기 3장)를 발견하는데, 이는 곧 아담과 이브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분별하는” 하느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 생명의 나무를 탈취하려는 시도와 연관됩니다. 한계를 넘어서 신(神) 같은 존재가 되어 선악을 결정하려는 유혹을 항상 받고 있는 타락한 존재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 특권을 탈취,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생명과 가치 없는 생명, 심지어는 생명 자체를 아예 부인하기까지 생명을 판단할 때마다, 그는 또 다시 생명 나무에 손을 뻗치는 셈이 됩니다. 인류 역사는 이러한 비극으로 가득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동료 인간들의 생명에 대한 지배자인 양 내세우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히틀러나 공산주의 하에서의 강제 수용소, 또는 우리 시대의 ‘신들’(gods)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부터 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고 최근의 교황들이 왜 인권과 특히 생명권을 그렇게 강조해왔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생물학과 유전공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권리는 계속해서 도전받고 있습니다.
‘생명’ 말씀·성사로 널리 알려야
-이창영 신부: 교회는 ‘죽음의 문화’를 넘어서 ‘생명문화의 건설’을 가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말하는 ‘생명문화’라는 용어가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교황대사 : 교회의 소명은 복음 선포,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음과 부활로써 죄로 인한 윤리적 죽음을 무너뜨리고 성삼과의 친교를 의미하는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앙과 세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존재, 생명의 새로운 차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곧, 자선, 교육, 연구, 사업, 혼인, 가정 등 모든 인간 활동에서도 성찰돼야 하며, 존재에 ‘그리스도교적 특성’을 부여해줍니다. 이 생명을 말씀과 성사로 선포하고 전하는 일은 교회의 임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성숙’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그 본성과 소명상 모든 죽음의 문화의 반대에 서 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생명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죽음의 문화, 문명으로 규정했습니다. 예컨대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고문, 심리적 억압,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 매매, 굴욕적인 노동 조건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치욕적인 것들입니다.
가톨릭 신자들,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불의에 반대함으로써 생명의 문화를 증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이러한 소명을 실천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문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아주 사소한 사랑의 행위, 즉 교통 규칙을 잘 지킨다거나 상점이나 건널목에서 양보를 한다거나 하는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참된 생명의 문화는 생명의 성소인 가정, 학교나 직장, 그리고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도 육성돼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유일하고 놀라운 선물인 생명에 대해 감사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 속에서 감사를 표시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치료목적 배아창출 ‘비윤리적’
-이창영 신부 : 오늘날 세계적으로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생명윤리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황대사 :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은 생명공학 분야에도 적용됩니다. 생명이 수정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할 때, 인간 배아는 하나의 인간 존재로 간주돼야 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온전하게 보호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배아의 생명권은 국가나 과학자, 또는 시민사회에 의해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 본질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법이 배아에게서 응당히 주어져야 하는 법적 보호를 박탈한다면 국가는 법 앞의 만민 평등이라는 원칙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생명의 권리들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적절한 형법상의 금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치료법 개발 등 그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배아를 생물학적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인간 배아를 창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입니다. 결국 법 앞에서 배아의 권리들을 부정하고, 보호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국가가 법의 토대 위에 세워진다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거부하며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지합니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센터가 최근 가톨릭대학교에 세워졌습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설립 역시 교회가 생명과 가정 문제에 대한 도전을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지의 하나입니다. 한국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생명과 가정 문제에 대해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이러한 운동을 지지하며, 많은 이들이 윤리적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지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윤리따를때 신앙-과학 갈등 없어
-이창영 신부 :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대처는 일부 관계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자 과학자, 의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한국교회 안에서는 신자 전문가들의 노력이 부족합니다.
▲교황대사 : 다른 모든 현대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생물학과 유전공학 분야에서도 선구자적인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의 많은 신자 과학자와 의료 전문가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시하면서 저는 더욱 많은 전문가들이 인간 배아 연구 실험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보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이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교황청은 인권 수호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에도 적극 참여합니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 생명학술원, 과학학술원, 그리고 사회과학학술원의 활동이 주목할 만합니다. 학술원의 위원들은 전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또한 전세계의 가톨릭 의학대학들과 의료원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생물학 및 의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부는 이미 한국의 가톨릭대학과의 협력 관계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는 가톨릭의 의료기구들간의 이러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고 지원합니다. 로마, 워싱턴, 멕시코시티, 마닐라 등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교황청립 혼인과 가정 연구소가 설립돼 가정과 생명 문제에 대한 학제적 연구 성과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연구기관이 한국에도 설립될 수 있다면, 동북아시아 지역에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 어긋난 행위 정당화 안돼
-이창영 신부: 자칫 과학과 윤리는 서로 갈등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과학적 연구에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을 포함한 과학 및 의학 연구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황대사 : 이 문제는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윤리가 과학과 반대된다는 주장은 신앙이 이성과 반대된다는, 매우 오래된 주장의 맥락에서 성찰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이성 위에 있지만 이 둘 사이에는 결코 균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비를 계시하고 신앙을 불어넣어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이 인간 이성과 정신도 부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그리고 나는 더 잘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은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고, 진리는 진리와 어긋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과학적인 연구는, 그것이 진정으로 과학적으로 수행되고 윤리적 법칙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결코 신앙과 갈등을 빚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과 신앙의 일들은 모두 똑같은 원천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초과학연구는 응용과학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자신의 힘만으로 존재와 인간 성장의 의미를 밝혀주지 못합니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향해 질서 지워진 것이며,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그 기원과 발전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은 사람 안에서 그리고 그 윤리적 가치들 안에서 자기의 목적과 한계들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윤리적 중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입니다. 또한 단순한 기술적 효율성이나 타인을 희생시켜 얻는 유용성, 심지어 만연한 이념적 입장으로부터 과학과 기술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결국 기본적인 윤리적 원칙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존중이 요구됩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인간과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인권, 참되고 온전한 선익에 봉사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구나 실험은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법에 반대되는 행위들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이창영 신부 : 생명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이 일반 사회로부터는 때때로 ‘근본주의’라든가 단순한 ‘종교적 입장’으로만 간주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일반 사회의 가치관과 어긋날 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황대사 : 생명윤리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하느님이 계시하신 인간의 소명과 존엄성에 대한 진리와 연관됩니다. 이 진리는 물론 인간 이성과 반대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어떤 입장은 종교적 다원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상대주의 이론과 반대됩니다.
오늘날 확고한 진리는 종종 폐기될 위험에 처해지곤 합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이해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뿌리를 갖고 있는데 이는 계시 진리의 수용에 장애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니라는, 진리 자체에 대한 상대주의적인 태도가 그것입니다. 지식의 유일한 원천을 이성으로만 간주하는 주관적인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종교는 순전히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며, 종교는 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해 거부하고 교회의 선포를 단지 근본주의나 불관용으로 매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이나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나 사회체제는 다수결의 민주적 원칙을 윤리 도덕 문제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낙태나 동성애 ‘혼인’에 대한 법률들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본질 자체에 아무런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취향대로 자신을 구성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을 모든 형태의 전통과 권위에서 해방시키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우주적인 진리의 명백한 증거까지도 폐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개념이 인간과 사회생활에까지 적용된다면, 인간은 선과 악에 대한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의견, 나아가 이기심과 변덕스러운 마음을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 유일하고 명백한 기준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낙태, 유아 살해와 안락사의 권리를 주장하고 법으로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잘못된 것 사악한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써 참된 자유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까. 윤리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파멸의 위험에 처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복음을 통해서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가장 완전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분은 인류와 그 운명에 대한 복음이십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당연히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시민사회와의 대화와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주교와 사제들만의 임무가 아니며 모두의 참여를 필요로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 기구들은 신자들이 사도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하듯이(1베드 3, 15) 우리는 우리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들에게 기꺼이 설명해줄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교육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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