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꽃마을에 처음 입원 할 당시만 해도 상태가 꽤 좋은 편이셨던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44세의 위암 말기, 병원에서 투병 생활하는 동안만 해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힘든 치료 과정을 잘 견디어 냈던 분입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와도, 죽기 살기로 병동 복도를 수없이 걸어 다니며 체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고, 그 와중에서도 아픈 사람을 보면 잔잔한 미소로 상담까지 해주던 분이었습니다.
위암에서 오는 구토로 인해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도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셨지만 고통스러움을 표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석달이 지날 무렵 임종이 가까워 올 때쯤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점점 힘이 빠져서 이젠 앉아 있을 기운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보니 이제 죽음이 얼마 안남은 것 같아요. 소변보기도 힘드네요.”
“그렇게 힘드시면 그냥 기저귀에 보세요.”
“봉사자들에게 미안해서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마지막에 자꾸 신세만 지고 갑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봉사자들을 더 편하게 해 주는 겁니다.”
“그나저나 언제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을까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 하느님께서 곧 기도를 들어 주실 겁니다.”
“다만 지금 힘들어하는 그 괴로움들, 구토와 통증, 두려움, 답답함들을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신세를 졌던 이웃들과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헌하세요. 그것이 마지막으로 갚고 갈 수 있는 희생이고 기도랍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 상황을 견디기가 훨씬 더 쉬울거에요.” “네…”
이런 대화를 한 것이 어제 밤이었는데 하느님께서 그의 청을 들어 주셨는지 아침 미사가 시작 될 쯤 임종을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아직 며칠은 더 버티실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는데….
마지막으로 병자성사와 전대사를 받았습니다.
“나는 교황성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000에게 전대사를 베풀며 000의 모든 죄를 사합니다.“ “아멘.”
영원히 잠든 얼굴이 편안해 보입니다.
죽음을 준비하고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입니다. 위령성월이나 되어야 성모꽃마을이란 시설의 주가가 조금 올라가는 것을 보면 평소에 주님께서 ‘늘 깨어 준비하라’라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길은 바로 잘 사는 길입니다. 오늘 이 순간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말, 마지막 행동인 것처럼 산다면 말기암환자들이 느끼는 1분1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박창환 신부 (청주 성모꽃마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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