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마음으로’
[본문]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인데, 두 길의 차이가 큽니다. 생명의 길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당신을 만드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당신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또 무슨 일이든지 당신에게 닥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거든 당신도 남에게 하지 마시오. …
죽음의 길은 이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길은 악하고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인, 간음, 정욕, 음행, 도둑질, 우상 숭배, 마술, 요술, 강탈, 위증, 위선, 표리부동, 교활, 오만, 악행, 거만, 욕심, 음담패설, 질투, 불손, 교만, 자만, 두려워하지 않음입니다.
‘디다케’ 1장 1~2절과 5장 1절
■해설
“마음 넓은 사람이 더 아름답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며
세상을 보는 삶은 ‘죽음의 길’
세상에는 길(道)의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다. 시골 농부가 걸어 다니는 오솔길이 있고, 동네 꼬마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길이 있고, 그리고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 또한 사람들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어떤 이는 노동자의 길을 걷고, 어떤 이는 사제의 길을 걷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고통의 길, 행복의 길, 기쁨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면서도 때로는 가장 먼 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기에 가장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면서도, 때로는 가장 먼 길이기에 가장 힘들고 어렵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걸어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먼 길일까? 아마도 30㎝도 안 되는 우리의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먼 길이 아니겠는가!
저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디다케’(Didache, 100년경 저술)는 사도 교부들 시대의 작품이다. 디다케란 그리스어로 ‘가르침’이란 뜻으로, ‘열 두 사도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주님의 가르침’ 또는 ‘열 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도 부른다. 이 문헌은 초기 교회 신자들의 윤리적인 의무들, 개인 성화를 위한 지침들, 교회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실천 내용들을 언급한 요약집이다. ‘디다케’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모든 의무들을 ‘두 개의 길’로 귀착시키고 있다. 하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악하고 저주로 가득 차 있는 죽음의 길이다.
우리는 머리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생각하며 때로는 우리의 얄팍한 머리만을 믿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며 결정지어 버린다. 머리를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고정화되고 그 한계성을 드러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쓰면 쓸수록 더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매우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를 늘 따라다니는 문제가 있다. 즉, 머리로 생각하고 결심한 것을 머리로만 실천하려고 하니 모든 것이 ‘작심 3일’로 끝나는 게 문제이다. 만일 머리로 생각하고 결심한 것을 우리의 마음으로 끌어내려 마음으로부터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아마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머리만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걷는 사람이다. 머리만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이며, 죽음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을 걷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길을 걷는 사람이며,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이기도 하다. 머리만 쓰는 사람은 ‘세상의 논리’를 앞세우는 사람으로 언제나 경쟁적이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이를 패배시키는 사람이다.
머리만 쓰는 사람은 위급할 때만 하느님을 만나려 하고 항상 “도와달라!”는 청원기도만 드리며, 다른 이와 함께 공존공생(共存共生)할 수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논리’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으로 자신도 살고 다른 이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음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이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서 오히려 자신을 죽여야 하고, 그래서 자신도 사는 사람으로(마르 8, 34~35), 다른 이와 공존공생(共存共生)할 수 있는 사람이다.
머리가 큰 사람 보다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더 아름답다. 머리만 쓰는 사람보다는 마음을 많이 보여주는 사람이 더 진솔한 사람이다. 얄팍한 머리로 사는 사람보다는 넓은 가슴과 넓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더 소중하고 그의 삶은 더욱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다. 마음으로 사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쉬운 길이며, 사랑이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지름길이고 생명의 길이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이 ‘생명의 길’이라면, 머리로만 생각하고 머리로만 판단하며 머리로만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삶은 ‘죽음의 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