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이들 기억하는 위령성월
우리의 삶 반성하고 돌아봐야
모든 성인의 날을 시작으로 위령성월이 시작되었다. 일년 중 언제라도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도하지만, 특별히 11월은 위령성월로 제정되어 연옥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
‘연옥’(Purgatoriu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이에 대한 교리가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중세기이지만, 내세의 정화를 위한 연옥에 대한 믿음은 이미 1세기경, 초기 그리스도교시기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묘지에는 죽은 이들이 하루속히 죄를 깨끗이 벗고 빛과 평화가 깃든 영원한 안식처에 들게 해주시기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내용이 적힌 묘비명이 발견되는데, 이는 비록 연옥이라는 공식적인 단어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미 연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지상에 있는 신자들이 내세의 정화를 겪고 있는 영혼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나 정화 기간을 단축시키는데 기도 등으로써 도울 수 있다는 사상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노는 ‘죽은 이를 돌봄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아직 내세의 정화를 필요로 하는 죽은 이들을 위한 신자들의 기도와 순교자들의 중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연옥에 대한 교리는 일찍부터 그리스도교 장례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장례용 성당, 가족 소성당 등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장소가 발전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또한 장례미술뿐만 아니라 일반 회화 제작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에 위치한 프리스킬라(Prisiclla) 카타콤바에는 3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남아있는데, 두 팔을 올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여인은 죽은 영혼이 하느님의 안식에 들기를 기원하는 모습이다.
이 외에도 고래 뱃속에서 사흘이나 지내다가 겨우 살아난 요나의 이야기도 장례예식이나 묘지, 또는 위령 미사를 드리는 교회나 장소 등에 즐겨 그려지는 주제였는데, 신적 도우심을 강조하는 이 주제는 요나를 살린 것처럼, 여기 묻힌 죽은 이에게도 같은 구원의 손길을 청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또한 어려운 현실에 처하더라도 하느님께 의지해야 한다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사회를 어지럽히는 문제들은 이 한 세상만 살면 끝이라는, 지극히 비 그리스도교적인 시각에서 나온 결과인 듯싶다. 최근에 불거져 나온 난자매매의 실태에 관한 보도는 생명경시의 풍조가 어디까지 다다랐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사람의 수정란에 가해지는 실험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몇몇 특수한 상황뿐 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외면하고 눈 앞의 이득만을 챙기는 행위가 사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겸허히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조수정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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