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사람이 있음을 기뻐하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력을 따라 한 해를 살아가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질서 있게 나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여유와 세상의 소음 속에 살면서도 우리 삶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며 살 수 있는 은총을 누립니다. 위령성월과 더불어 맞이하는 연중 마지막 주일은 한 해 동안의 삶을 신앙 안에서 돌아보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새해를 차분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연중 마지막 주일에 우리가 묵상하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복음 전체의 가르침의 요약이며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최후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며칠 전에 수능 시험을 치렀던 수험생과 같은 마음으로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지나쳐 버린 주님의 모습은 없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제 고개는 연신 저의 삶의 모퉁이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시험의 답은 교과서에 있고 인생의 답은 삶속에 있듯이 신앙의 답은 주님께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신앙의 답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찾는 주님은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지나쳐 버리기도 합니다. 그분은 상본에 나오는 고정된 이미지로 오시는 분도 아니고, 당신의 이름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와의 만남을 계획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로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찍이에서, 친근하게 혹은 냉담하게 내가 대한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에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왔던 천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걱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결산해야 할 때를 맞이합니다. 심판은 개인적인 결산의 때이며 또한 온 인류가 함께 겪어야할 결산의 시간입니다. 그 결산의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느냐를 따지지 않으시고 얼마나 사랑했느냐를 보시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일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나의 욕망과 만족을 쫓을 것인가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참된 삶을 살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위하여 선택하고 살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길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사랑은 복잡한 기교나 현란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진실입니다. 여기 내 삶 속에 주어진 현실이 사랑의 터전이며,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 ‘가장 중요한 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듯이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을 때마다 사랑해야할 일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 할 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정으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김영수 신부(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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