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추구는 자연스러운 권리
지나치지 않는 겸허함 요구돼
행복이란 말은 어느 하나로 고정시켜 정의할 수 없다. 행복이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바람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행복이라 하고 어떤 방법으로 행복을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고, 개인의 생활 조건이나 가치관에 따라서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절대 기준의 행복론을 설정할 수는 없지만, 현대인을 위한 행복의 의미를 모색해보기 위해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행복관을 참조해본다.
한국인의 행복관
전통적인 한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기본적으로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얻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 중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내면적인 도덕성이다. 전통적인 문학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인들의 의식은 정직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 결국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단지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이 도덕적인 궁극 원리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도덕적으로 선(善)인 궁극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으며, 비록 지금 전개되는 세상의 모습이 올바르지 못하더라도 결국에는 도덕적인 궁극 원리에 의해 의로움과 선함이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은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라는 의식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복 받는다’, ‘타고난 복’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적극적이고 운명 개척적인 의식이 강조되고 있지만, 복에 대한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의식은 ‘주어지는 것, 받는 것’이었다. 개인이 일생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복은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복이거나,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알맞게 주어지는 복이라고 생각했다.
복을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만큼의 복, 타고난 만큼의 복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았거나 복을 누릴만한 개인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아무리 타고난 복이라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지나침에 대한 경계
주어진 만큼의 행복이라는 의식에 담겨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지나침에 대한 경계이다.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만 하면 무조건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은 수(壽), 부(富), 귀(貴), 다남(多男)의 현세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항상 그 바람이 지나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지나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자연스럽고 소박한 의미로서의 복(福) 추구가 아니라 탐(貪)이 된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이 바랐던 행복이 지극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었으면서도 그것이 결코 무분별한 탐욕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지나침에 대한 분명한 경계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복(福) 추구와 탐(貪) 사이의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맞이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현재의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나 많이 확인할 수 있다.
행복은 분명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권리이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적절함을 겸허하게 깨닫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행복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어진 만큼의 행복’이라는 의식은 현대 우리들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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