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화해하며 ‘아름다운 이별’ 준비
성탄을 준비하고 재림할 구세주를 기다리는 대림시기다. 교회는 이 대림시기로 한 해의 전례주기를 시작한다. 본지는 ‘아기 예수님 탄생’이란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대림시기 4주간에 걸쳐 각 주간의 의미를 짚어보고, 그 의미를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신앙인의 자세를 성찰한다.
제1주일 / 희망이 있는 종말
주요내용 : 구세주를 깨어 기다리는 교회의 종말론적 자세를 강조
(마르 13, 33~37; 마태 24, 36~44; 1고린 10, 11; 1베드 4, 7; 다니 9, 26)
대림시기는 그리스도의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재림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기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탄생한 예수님. 하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그리고 부활하신다. 이 부활한 구세주가 때가 되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임을 믿고 그것이 곧 창조의 완성임을 증언하는 때가 바로 대림시기이다.
모든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최종 희망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얻었기에 ‘종말론적 희망’을 갖게 됐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단지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예수님이 전해주신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주님 생각만 하면 죽음 앞에도 힘이 절로”
■풍경1-죽음을 맞이한 자
말기암 투병중인 함순태 할아버지
“…죄의 용서와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함순태(치릴로.82) 할아버지가 기도한다. ‘췌장암.’ 할아버지가 지난해 말에 선고받은 병명이다.
‘죽음’ ‘종말’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랜 세월 연령회 활동을 하며 많은 ‘주검’을 봐왔는데, 결국 나에게도….
남들은 “자식도 다 커 구실하고, 나이도 들만큼 들었네”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번민이 들었다. 끊임없이 기도했다. ‘죽음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달라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구원’ ‘세상 끝날에 심판자로 오실 구세주’…. 이러한 내용들이 할아버지의 주된 기도 소재였다.
“나도 신앙인인데, 이제 정말 그토록 그리던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게 됐는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4대째 내려오던 천주교 집안의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할아버지. 6.25때 누나와 단둘이 고향인 황해도를 떠나 남한으로 내려와 고생도 많이 했고, 외로움도 컸다. 수많은 난관도 이겨냈다. 이러한 승리의 원동력은 역시 신앙. ‘어떻게 살아왔는데… 죽음앞에서 흔들릴 순 없지.’ 이제 할아버지는 참 편안해졌다. 최후의 승리자로 종말에 영광스럽게 오실 주님을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난다.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나름대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참 쉽지는 않네요.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함할아버지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다.
천국 가는 길 마지막 ‘길동무’
■풍경2-선종을 돕는 자
호스피스 병원 ‘모현의료센터’ 직원들
죽음 임박한 환우에 희망 심어주기 위해
정성어린 사랑 전해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모현의료센터(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소재, 031-536-8998).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병원이다.
삶을 잘 정리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설립목적. 죽음까지도 무력화시킨 예수님의 부활. 이러한 부활 신앙에 입각한 종말론적 희망을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전달하기위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의료센터 직원들.
조용하던 병원이 잠시 술렁인다. 말기 간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한 환우가 고통으로 절규한다. 담당 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달려간다.
환우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평온해진다.
가능하면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호스피스 병원의 특징. 환우가 고통까지도 승화시키길 바라기 때문이다. 병원 한 켠에선 나지막한 흐느낌 속에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한 환우가 주님 품으로 돌아갔다. 시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과 병원 직원들은 고인이 한 점 흠없는 영혼으로 하느님께 나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나중까지 견디는 삶,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나중까지’라는 말 속엔 ‘한 사람의 생명의 끝’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모현의료센터 박삼화 원장수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떨쳐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종말론적 희망을 가진 삶이라는 확신을 환우나 보호자들에게 심어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임종자들의 침상을 지키고 영원의 문턱까지 동행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모현의료센터 직원들은 오늘도 쉼없이 정성어린 사랑의 돌봄을 펼치고 있다.
시신 깨끗이 닦아내며
하느님 곁에 잠들도록 기도
■풍경3-죽은 이를 위해 일하는 자 ‘염봉사’ 박춘봉 할머니
“제 손으로 이 망자를 깨끗이 닦아 주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니, 주여 이 사람의 영혼을 어여삐 여겨 너그러이 받아주소서.”
시신 곳곳을 닦아내는, 염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박춘봉(데레사.70) 할머니. 서울 신정동본당 연령회 회원이다.
죽은 이의 가녀린 영혼이 하느님의 자애로운 품안에 평안히 잠들게 하기 위해 쉴새없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기도한다. 1988년부터 시작한 연령회 활동. 지금까지 100구가 넘는 시신을 깨끗하게 했다.
몹쓸 병으로 죽은 시신은 냄새도 많이 나고 힘도 많이 든다. 그런 때는 더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면 어느새 냄새도 사라지고, 피곤함도 사라진다.
“아무리 험한 시신도 몸을 깨끗이 하면 평안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임을 새삼 느낀다.
44세때 청주교구 무극본당에서 세례받은 박할머니. 서울로 이사와 바쁜 생활을 핑계로 잠시 냉담했다. 잘못을 뉘우친 후 보속을 하고 싶은데, 문득 연령회가 생각이 났다. 염을 하며 죽은 자의 영혼도 달래주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속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망자와 함께 하다보니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 속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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