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화의 오류 시정을 위해
총체적 이성 이해로 돌아가야
현대문화가 본질적으로 서구 근대철학에 의해 형성되었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중세의 신적 이성을 인간의 이성으로 전환시킨 ‘이성의 시대’이며,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설정하여, 끊임없는 진보를 목적으로 설정한 문화이다. 이러한 근대의 기획이 빗어내는 역사적 오류와 한계는 오늘날 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확인된다. 그래서 철학은 물론 학문 전반에서는 이러한 반성에 근거하여 근대를 벗어나고 근대의 기획자체를 수정하려는 시도들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먼저 이성에 대한 이해를 바꾸려는 노력으로 드러난다. 근대의 이성은 오직 인간의 이성, 도구적 합리성에만 치중하였으며, 그에 따라 이와는 다른 부분들이 억압되고 잊혀지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감정이나 영성은 이런 과정에서 이성과는 다른 것, 심지어 반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가 현대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초월성에 대한 무시, 감성의 영역을 낮추어보는 태도, 현실에만 가치의 중심을 두는 문화적 풍토가 빗어졌다.
이러한 문화가 초래한 역기능과 한계를 우리는 근대의 역사에서 무수히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그에 대한 반발로 감성과 영성을 강조하는 문화적 분위기는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인간은 결코 초월을 향한 열망과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도외시한 일면적 이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날 철학에서는 근대 이성의 범위를 넘어 인간의 모든 내적 능력과 열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로써 근대의 이성 개념이 아닌, 이성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된 영성, 감성 등을 통합적으로 회복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성에 대한 일방적 비판은 인간의 지적 노력 자체를 소홀히 여기는 풍조로 확대되고 있다. 근대 이성의 일면성을 비판하고 영성과 감성의 정당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곧 지성에 대한 반발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현대사회와 문화에 광범위하게 펴져있는 반지성주의와 전문성에 대한 비판, 인문정신에 대한 무시는 한편으로 역사적 이유와 타당성이 있는 결과이다. 자신이 자리한 터전과 역사적, 문화적 근거를 성찰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문화를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는 지성의 비성찰적 태도가 이런 풍조를 일으킨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이는 문화제국주의의 맥락에서 교정되고 반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과 그에 근거한 학문을 실용성이나 현실적 가치에 따라 매도하는 것은 크나큰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그에 관계되는 영역을 무시할 때 물질적이며 과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생명공학이나 과학주의, 자본주의의 일방적 범람에서 보듯이 올바른 지성의 작동과 그 몫을 거부할 때 문화는 방향을 잃고 헤메이며, 의미의 공허함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다. 생명에 담긴 초월성이나 인문정신은 물론이고, 생명의 존엄성과 윤리를 도외시한 생명과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두려울 뿐이다. 그 뒤에는 이미 19세기 철학에서 오류로 판명한 ‘과학주의’의 현대판 변형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자본을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현대문화의 파렴치함과 조잡함을 우리는 곳곳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현대문화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영성과 감성에 기반한 총체적인 이성 이해로 돌아가야한다. 그것은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에 근거한 이성이 아니라 생명의 총체성에 뿌리를 둔 생명이해의 학(學)을 말한다.
그와 함께 영성의 강조가 결코 이성에 대한 거부나 반지성주의로 흘러서는 안된다. 현대문화의 토대인 서구 근대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초월에 대한 심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풍조를 벗어나 올바른 이성 이해와 인문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성에 기반하지 않은 영성은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개인의 내밀한 감수성에 국한될 것이다. 그것은 영성을 내밀화하여 공동체 정신과 지성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럴 때 영성조차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기에 생명의 감성과 삶의 이성, 초월 영성이 올바르게 어우려질 때 우리는 현대문화의 폐해를 벗어나 미래로 향해갈 수 있을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