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자”
그리스도-우리의 길
필리핀에서 생활할 때 일입니다. 그 곳 사람들은 낯선 이가 길을 물으면 누구나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준 곳을 가보면 엉뚱한 데가 나와서 또다시 길을 물어야 했고 많은 경우에 가고자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리핀 사람들은 마음이 여려서 다른 사람에게 ‘NO’라는 대답을 잘하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모르는 길을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서 아는 것처럼 알려주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낯선 길을 찾아갈 때는 항상 길을 잘 파악한 다음 스스로 찾아서 가는 편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어떤 길을 가야할 지 헤매며 길을 묻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진리와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이 되도록 하려면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이 되시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없애야 그분이 우리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기심과 욕심의 골짜기를 사랑으로 메우고, 헛된 욕망과 위선의 언덕을 깎아내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길을 갑니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행로이며 세상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길은 땅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위에도 있고 하늘 위에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길이 있고 영혼에도 길이 있습니다.
인생의 길은 두 가지입니다. 옳은 길, 참된 길, 좋은 길은 생명의 길이며 축복을 향해가는 길입니다. 그른 길, 헛된 길, 나쁜 길은 우리를 멸망과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유이지만, 각자는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이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적은 반면,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넓고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경고합니다.(마태 7, 13~14)
회개는 ‘길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의 어긋난 길을 바른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하고 사는 삶, 욕심내지 않아도 될 것들을 욕심내고 사는 삶, 조금만 가져도 될 것을 많이 가지려 하고, 많이 사랑해야 할 일들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헛된 길 위에서 탕진한 삶의 빈껍데기를 버리고 다시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가는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참된 길을 갑니다. ‘늘 깨어 준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알고 그 길을 따라 갑니다.
대림절은 인생의 여정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그 길 위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때입니다.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지금 나는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가? 이렇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더욱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헛된 길이었다면 이제 부터는 참된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길을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가는 길도 그른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원리중의 하나는 ‘우리가 그분의 길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을 여셨던 요한 23세께서 공의회 소집 명령을 내리시며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일인데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는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일, 하느님의 뜻이 내가 가고 싶은 길, 내 마음 내키는 일, 내 뜻과 다르더라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대림절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다시 찾는 때입니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만큼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2베드 3, 14)이 우리가 받아야할 회개의 세례입니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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