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을에 와서 내내 입을 다물고 통증이 와도 참기만 하던 환자였다. 똑바로 눕는 것이 힘들어 늘 앞으로 엎어져 있거나 옆으로 누워서 지내는게 고작이다. 엄마가 옆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약을 먹으면 통증이 훨씬 덜하고 안 아플텐데. 굳이 약을 안먹겠단다.
그래서 어머니를 내 보내고 환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나는 지금 왜 000씨가 약을 안먹으려고 하는지 아는데 맞춰 볼까요? 눈이 동그래 진다. 설마 하는 눈치다. “빨리 죽을려고 그러죠? 약 먹으면 오래 살 것 같으니까. 약을 안 먹어야 빨리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인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면서 자기도 힘이 들지만 어차피 가망이 없어 죽을 거라면 부모님 보기에도 죄스럽고 얼른 가야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자매님 안된 얘기지만 약 안 먹는다고 빨리 죽는 일은 없어요? 또 약 먹는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약을 먹고 안 먹고는 큰 상관이 없어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라도 효도하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 “어떻게 효도를 하는데요?” “간단해요. 자식이 먼저 가는 것도 어머니에겐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인데 죽기 전까지 괴롭고 힘든 모습을 보여주면 맘이 편하겠어요? 그러니까 약을 먹고 통증이 없는 상태로 편안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엄마도 마음이 편할겁니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자기 딸이 웃으며 즐겁게 지내는 것을 바라시니까 그렇게 하세요. 엄마 들어오시면 직접 물어 보세요. 약을 먹는게 좋은지, 괴롭고 힘들게 지내는게 좋은지?”
마침 엄마가 들어오신다. “엄마 나 약먹는게 좋겠어요?” “그럼!” 대답하시는 엄마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알았어요! 약을 먹을께요.”
다음날 아침 엄마가 쪽지를 들고 오셨다. 어제 약을 먹고 밤새 잠을 잘 잤다고 하면서 딸에게 약을 먹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딸이 써준 쪽지를 건제 주셨다. 내용은 이러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환자의 목숨 하루이어 주기보단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신부님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 KBS2에서 방영된 ‘장미빛 인생’의 주인공 맹순이는 우리나라 말기암환자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모든 말기암환자들이 맹순이처럼 통증 속에서 죽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호스피스 시설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편안한 선종과 죽음 준비를 시켜 줄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하루만 해도 다섯분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물론 편안한 속에서 병자성사에 전대사까지 받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임종을 지켜 보는 셈이다.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입구에 이런 글이 있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돌아가시자 마자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을 보니 이 말이 더더욱 실감이 난다. 무조건 열심히 살자.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기에….
박창환 신부 (청주 성모꽃마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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