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명에 참여한 완전한 여인”
활동 수도회 ‘예수 수도회’ 창설자
소녀들 위한 학교 마련 교육에 힘써
메리 워드(Mary Ward, 1585~1645)는 지난해 1월 ‘동정성모회’에서 ‘예수 수도회’로 명칭을 변경한 사도적 활동 수도회의 창설자이다.
2004년 10월 한국 진출 40주년을 맞은 예수 수도회는 지난 2003년 11월 예수의 이름을 지닌 수도회 명칭은 창설 은사의 한 부분이며 이 수도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예수 수도회’라는 이름을 수도회의 명칭으로 공식 사용하기로 했다.
메리 워드는 1585년 1월 23일 영국 요크셔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상류 가정 출신의 자녀들과 같은 과정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는 헨리 8세가 영국 교회를 창설하고 수장령을 발표해 영국 국교회를 성립시켰고, 그 후 엘리자베스 여왕은 통일령을 내려 모든 예배 의식을 국교회의 의식과 기도로 통일시켜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박해가 가장 극심하던 시기였다.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가 이단이 출몰하고,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인간 중심적 사고가 팽배해 유럽 사회와 가톨릭 교회는 극도의 혼돈과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시대상 속에서 교회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들도 있었고, 특히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예수회를 창립해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종교개혁으로 위축된 교회를 보호하고 재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안에서 메리 워드의 부모 역시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역경을 겪는 가운데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신자들 중 한 명이었고, 메리 워드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면서 순교를 열망할 만큼 깊은 믿음을 간직하게 됐다.
메리 워드는 그래서 엄격한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가톨릭 교회가 박해를 받는 고국을 떠나 1606년 6월 스페인령 네덜란드 지방의 작은 도시인 생토메르의 관상 수녀원인 성녀 글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녀회에 입회했다.
1609년 공동체 설립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기존 수녀회의 봉쇄 생활이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당시 교회 안에서 여성 수도자들은 수도원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고, 만약 수도회의 담장 밖으로 나서면 수도자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교회법적으로 여성 수도자들은 철저한 봉쇄와 관상생활을 통해서만 수도생활을 하도록 허용됐고, 이에 따라서 오늘날 처럼 수녀들이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봉사하고 활동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메리 워드는 1609년 동료 수녀들과 함께 생토메르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그녀는 예수회의 회헌에 따라 봉쇄 없이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며 봉사하는 사도적 활동 수도생활 양식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공동체는 우선 영국의 박해를 피해서 대륙으로 건너온 영국인 가정의 소녀들을 위한 무료 학교를 마련했다. 그녀는 여성들 역시 교회 안에서 합당한 지위를 갖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우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예수 수도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 교육 과정은 근대 교육의 효시라 할만했고, 그 새로운 면모는 교육관, 여성관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즉, 여성들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기술을 익혀 장래를 준비하도록 했고, 젊은 여성들이 나중에 어머니로서, 책임감 있는 사회인으로서, 수도자로서 각자 자신의 성소를 따르도록 준비시킨 것이다.
당시 시대로서는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 공동체는 이후 예수회처럼 이냐시오의 영성을 수용해 자신들의 수도 영성에 적용시키려고 했고, 이는 예수회로부터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이냐시오 영성 수용
메리 워드와 그녀가 세운 수도회는 그러나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했다. 벨기에와 이탈리아, 독일 등에 여러 분원을 설립하고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면서, 예수회의 회헌을 바탕으로 한 수도회의 계획서와 청원서를 교황에게 제출했지만 수도자들이 봉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 그리고 수도회 창립을 돕는 예수회 사제에 대한 반감 등으로 많은 오해와 공격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1629년 9월 30일에는 수도회들의 문을 닫으라는 교령이 발표됐다. 1631년에는 교황으로부터 결정적인 공동체 금지 교서가 내려졌고 메리 워드는 감옥에 갇혔으며, 이어 뮌헨의 앙거 수도원으로 옮겨져 감금됐다.
하지만 교회 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교황에게 청원하기 위해 풀려난 그녀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메리 워드를 만나주었고, 비록 수도회의 인가를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소녀들에 대한 교육 금지가 교령에 없었기에 수도회의 활동은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창설한 수도회는 이후 170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로부터 수도 규칙을 인가받았고, 1749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교육 사업을 이끌 총원장을 선출하도록 허락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877년 교황 비오 9세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고 1909년 교황 비오 10세는 메리 워드가 이 수도회의 창설자임을 공식 선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서한 ‘여성의 존엄’에서 그녀를 일러 “갖은 박해와 어려움과 차별 대우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명에 참여한 완전한 여인”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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