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은 참된 기쁨 누려”
기쁨의 원천이신 그리스도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늘 그 자리에서 제 때에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도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묵묵히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는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는 세례자 요한을 닮았습니다. 기쁨의 주일이라 불리는 대림 3주일은 겨울나무와 같은 세례자 요한이 누리고 살았던 기쁨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얼마 전부터 주일 저녁 미사를 ‘묵상미사’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많이 참석하는 주일저녁미사를 그들의 영적감각에 맞추어 봉헌해보려고 몇 명 안 되는 청년들과 함께 준비한 미사였습니다. 젊은이들의 미사에 흔히 등장하는 드럼이나 전자악기 하나 없이 고요함과 촛불만으로 이루어진 어둠 속에서 단순한 성가로 이루어지는 미사입니다.
첫 묵상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청년들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한 결 같이 새로운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소박하고 단순한 미사를 통해서 소란스럽고, 복잡하고, 현란한 세상에서 찾아 헤매던 기쁨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으로부터 차오르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조명에 익숙한 그들에게 어둠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비트박스의 울림과 소음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게 고요함은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빠르고 복잡한 세상살이에 적응해야하는 그들에게 단순함은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게 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두 달 째 계속되는 이 미사에 청년들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차츰 늘어나고 있고, 청년들도 그 전 보다 훨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안에 내재하는 기쁨의 샘은 겉으로 보이는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임을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기쁨은 방금 빛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혜성과 같은 흥겨움이 아니라 변함없이 반짝이는 별과 같은 것입니다. 그 기쁨은 소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타들어 가는 가시덤불과 같은 쾌락이 아니라 조용히 오래 지속되는 모닥불과 같은 것입니다. 훨씬 오래 지속되기에 기쁨은 힘든 인생도 기쁘게 만들고 상처로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보속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권유하십니다. 언제나 기뻐하라는 말씀은 충만한 삶에서 오는 내적 기쁨을 잃지 말아야한다는 신앙적 요청입니다. 기쁨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동물은 외부조건이 충족되면 만족감을 느끼며 그 것을 밖으로 표현합니다. 동물은 오직 외부의 조건에 의해서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자기 안의 에너지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철학자들은 기쁨이란 좋은 정신적 상태이며, 노고를 동반하는 좋은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은 파괴적인 열정이 아니라, 건설하고 치유하는 열정이고, 생명으로 가득 찬 열정이며, 그 안에서 삶에 대한 의미와 희열, 그리고 에너지가 솟아나는 열정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나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고 대답합니다. 그의 대답은 ‘깨어 있는’ 사람의 대답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으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기쁨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지음 받았으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다는 영적 진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요”라는 고백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우리들 가운데 서계신’ 주님을 알아 볼 수 있으며 그 분이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않은 사람만이 참된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영혼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기쁨은 ‘억눌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게 하는 힘입니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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