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노동자의 어머니”
감옥에서 성경 읽다 하느님 현존 체험
평생 전쟁 폭력 불의에 반대하며 투쟁
1980년 83세를 일기로 하느님 품에 안긴 도로시 데이. 그녀는 지난 100년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신자로 꼽힌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며 ‘가난한 이웃과 힘없는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더 데레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늘 소외되고 그늘진 이들과 함께한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도로시 데이는 1897년 11월 8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결코 넉넉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만 덜 가지면 한 사람 몫이 더 나온다’며 식탁에 굶주린 이들을 초대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도로시는 어려서부터 ‘가난’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는 사회개혁을 꿈꾸며 1914년 대학 진학 후 사회당에 가입했지만 당리당략에만 치중하는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사회당을 탈당, 뉴욕으로 갔다. 당시 뉴욕의 가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집은 물론 일자리마저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일간지 ‘부름’에 입사, 기자가 된 도로시는 자본을 반대하는 모임, 전쟁 참여를 반대하는 모임,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모임 등을 취재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권익을 대변했다. 또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경찰관에게 물매를 맞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여자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는 것에 항의하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현장에 참여했다가 독방에 감금되기도 했다.
이 때 도로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종교가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감옥에서 성경을 통독하며 하느님이 현존한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출옥 후 뉴욕을 떠나 한적한 섬에 집을 구입,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파도 소리와 새 소리를 들으며 자연 속에 계신 하느님을 느끼며 기도에 전념한 것은 물론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자서전을 비롯한 각종 영성 서적에 심취했고, 세례를 받았다.
1932년 실업자 단식 행진을 취재한 그는 인근 성당을 찾았다가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강한 부르심을 느끼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이듬해 5월 1일 가톨릭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진보적 신문 ‘가톨릭 노동자’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창간호 사설에서 신문 발행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없는 일거리를 찾아보려고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지금의 아픔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신문을 발간한다.”
월 1회 발간되던 신문을 찾는 사람이 늘어 ‘가톨릭 노동자’는 창간 6개월 만에 발행부수 7만 5천부에 달하는 매체로 성장했다.
그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료급식소 ‘환대의 집’을 33개나 설립했고, 가난한 이들이 자활할 수 있는 농촌 공동체도 만들었다.
또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고통 받는 세계를 향해 ‘평화와 자비’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신문을 통해 평화를 호소하고 때론 교회가 전쟁을 용인하는 태도에 항거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미국 언론은 핵무기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사진을 게재하며 하느님께 공로를 돌렸지만, 도로시는 신문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을 조롱할 수 없다. 그 분은 우리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
그는 타자기 앞에 붙어있지 않으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불의의 조정자로 일하거나 대학과 교회에서 강의하는 일로 일과를 보냈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바삐 일했지만 그는 매일 미사와 기도, 묵상을 거르지 않았다. 이런 영적 생활이 활발한 활동의 원동력인 된 셈이다.
평생 전쟁과 폭력, 불의에 반대한 그녀의 노력에 하느님께서 응답한 것일까. 이 무렵 로마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고 교황 요한 23세는 전쟁을 묵인하던 교회의 입장을 전면 수정, 무기 경쟁 중단과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 건설 의무를 강조하는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발표했다. 당시 68세였던 그는 단숨에 로마로 건너가 동료 여성들과 함께 10일간 단식하며 공의회가 사회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한 지침을 만들어주기를 요청했다.
공의회는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을 발표,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 사목헌장은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을 그 주민들과 함께 무차별 전멸시키려는 전쟁 행위는 모두 다 하느님과 인간 자신을 거역하는 범죄이므로 단호히 단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도로시 데이, 그녀는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행동가이자 명상가’였다. 가톨릭 노동 운동가이면서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6권의 저서와 1500여편에 달하는 기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필과 비평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꼬집고 정의에 입각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입바른 소리와 이를 실천하는 행동으로 인해 70살이 넘은 나이에도 교도소를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다.
그에게 불의는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나눔과 섬김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그의 삶이자 곧 영성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앞세우는 사랑의 실천이 그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에게 레테르 훈장을 수여한 노틀담 대학교는 수상 이유를 “괴로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편안한 사람을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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