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것
하지만 인간 도리가 우선
부와 재물의 문제는 현세를 살아가는 종교 신앙인들에게 곤혹스러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현세적 삶을 위해서는 부와 재물이 필요하고, 가능한 풍족한 삶의 조건을 원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하지만 철저한 종교적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와 같은 현세적 가치들로부터 초탈해야 할 것 같다. 과연 부와 종교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대립적인 가치인 것인가?
종교는 본래 인간의 현세적 삶과 구분할 수 없다. 현세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의미를 줄 때 진정 살아있는 종교일 수 있다. 실제로 종교적 가르침 안에는 무조건 세상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내용보다,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부에 대해서도 여러 종교에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유교(儒敎)에서의 부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교에서의 가르침
공자(孔子)는 우선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긍정했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부의 추구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부의 필요성을 긍정하면서도 한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부(富)와 귀(貴)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리에 맞게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 곳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부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도리에 어긋나게 얻는 부귀까지 긍정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부귀만을 긍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부 자체는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가 근본적인 도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부보다 세상의 근본적인 이치와 인간의 도리가 우선하는 가치이다. 공자가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부의 추구가 근본적인 도리를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부와 재물에 대한 공자의 분명한 원칙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가르침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공자는 두 가지의 가난을 구분했다. ‘자기로 인한 가난’과 ‘자기에게 원인이 없는 가난’이다. 자신의 게으름이나 옳지 못한 품성으로 인한 가난은 자기로 인한 가난이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의 원인을 극복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데도 가난하고 빈천해지는 경우가 있다. 공자에 따르면 그것은 세상에 올바른 도(道)가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세상이 올바르지 못한 이유 때문에 주어지는 가난은 피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한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이 올바르지 못한 상황에서 얻어지는 부와 귀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고, 그런 올바르지 못한 부귀를 누리느니 차라리 가난함 가운데에서 올바른 도(道)에 따르는 삶을 즐기는 것이 옳은 길이다.
“세상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거나 천하다면 수치다. …세상에 도가 없는데 부유하거나 귀한 것은 수치다.”
결국 공자는 부의 현실적인 필요성과 자연스러움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도(道)라고 하는 보다 궁극적인 원리에 의해 올바르게 운용(運用)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가르침에는 부가 지니는 위험성에 대한 경계가 전제되어 있다. 부의 위험성에 빠져 도에 어긋나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가난함 속에서 도와 예(禮)를 즐기며 살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그만큼 부가 지니는 위험성이 크고 유혹적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부에 대한 부정과 거부의 가르침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부가 인간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보다 궁극적인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결국 부는 인간에게 필요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부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잊지 않을 때 부가 가져다주는 유익함이 더욱 값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지섭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우교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