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넘기다 보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편안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달에 근심스런 일이 많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메모가 이것저것 많을 때에는 뭔가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던 때이고, 반대로 한글자도 없이 여백만 계속되는 때는 세상 편하게 살 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꼭 걱정스런 일이 생겨야만 비로소 삶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마주했을 때 작성되었다. 물론 현재 살펴보고 있는 역대기계 역사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늘 해오던 말이지만, 힘든 삶은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생명과 삶을 체험하게 하는 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주에 이어 역대기계 역사서가 표현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윗왕조와 솔로몬
역대기계 역사가가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다윗왕조의 위상이다.
창조 때부터 유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역대기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다윗의 통일왕국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윗 이전 시대(아담에서 사울까지)를 간단히 족보로 처리하고(1역대 1~9장), 사울의 죽음을 다윗이 등극하기 위한 단초로만 제시하며(10장), 이후(11~29장)에 다윗 왕국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 봐서도 이 역사서가 다윗왕조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음은 쉽게 판별된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다윗의 정치를 신정(神政)의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 때문에 다윗은 정치적 인물이라기보다 신정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로서 부각되어 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할 때, 정치력이나 군사 지도자로서의 모습 보다는 예배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종교적 이미지에 힘입어 신명기계 역사서가 보도하고 있는 바세바와의 간통사건, 혹은 왕자들의 난 등은 완벽하게 삭제되어 있다. 물론 솔로몬도 다윗처럼 이상적인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그의 품위를 손상시킬만한 사건들(통치 초기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사건, 말년의 사치와 우상숭배, 이방여인들과의 혼종혼)은 하나도 역사서 안에 기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 사상
다윗 왕조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남 왕국에 대한 부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입장은 신명기계 역사서의 주요사상이었던 인과응보사상으로 연결된다. 역대기계에 의하면, 남왕국이 북왕국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훼의 계약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이유 때문에 상응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역대기의 입장인 것이다.
혈통에 대한 강조
또한 역대기는 ‘족보’라는 특별한 장르를 통해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예배 공동체의 특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과의 분리가 가장 시급했고, 이러한 관점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혼종혼을 금지하고(에즈 9~10장 느헤 13, 23~27) 이미 결혼한 이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추방하는 완고함을 드러낸다(느헤 13, 1~3).
모세의 율법
성전에 대한 강조와 함께 매우 강하게 부상된 것은 모세의 율법, 즉 토라였다. 에즈라에 의해 초막절 축제 때 선포되면서 귀환 공동체의 실정법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모세의 율법은 귀환자들(남은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려는 대사회적 움직임의 내부적 기준이 된다(느헤 8, 1이하). 이로써 모세의 율법(성경)은 이스라엘의 삶 전반에 걸쳐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한 사회(종교)개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러한 상황은 에즈라를 ‘유다이즘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하며, 실정법으로서의 토라는 이스라엘을 율법위주의 사회가 되게하는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무지함으로부터의 해방
현실을 정확히 보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그 어떤 장애도 넘어서서 진행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구약성경의 역사서들은, 그 넘지 못할 장벽을 뚫어주시고 그 장벽에 문을 내어주시는 분은 누구도 아닌 하느님이심을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자기 삶의 역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간 순간 이어지고 있음을 여간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나야 내가 그동안 하느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구나, 그래서 다쳤구나, 를 깨닫게 되니 말이다.
2006년에는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나의 무지함에서 제발이지, 한걸음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이런 결심을 한 것 같은데, 그 전 해에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