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본질과 핵심은 “배아 생명권”
‘연구윤리’ ‘취재윤리’ 중요하고 ‘논문조작 여부’ ‘음모론’도 밝혀야하지만 논란의 본질과 핵심은 “배아 생명권”
인간생명수호 관점에서 비켜난 논란들
이젠 생명이냐 반생명이냐를 토론해야
지금 우리 사회는 언론이 이른바 ‘진실게임’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는 추악한 거짓과 진실의 난무 속에 하릴 없이 놓여 있다. 게임의 당사자들은 결사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진실’편에 서 있음을 강변하지만, 그의 상대편에는 게임의 파트너가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때로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꾹 다문 입술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은 누가 어느 정도의 진실을 지니고 있는지 판가름이 날 일이지만, 추정하건대 어느 편도 진실을 온전히 보유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피해자는 게임의 당사자들을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해온 국민들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국민들은 또한 단순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논란은 생명과학자들이나 종교계, 정부와 국민을 막론하고 한국 사회와 국민들 모두를 일종의 혼돈스러운 ‘진실 게임’으로 이끌어들였고, 그 혼란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범국민적인’ 상황 자체가 어찌 보면 크게 ‘엇나간 논쟁들’이라는 것이 전혀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우석 논란의 성격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이 논란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과학의 힘에 대한 무조건적 신봉과 윤리적 고려가 배제된 과학 연구, 언론의 취재 관행에 있어서의 윤리성 부재, 맹목적인 국익 우선주의, 네티즌의 때로는 광적인 집단성, 과학 연구에서조차 과정보다 결과만을 우선시하는 성과 지상주의 등등.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면에서 황우석 논란은 보다 더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에서 상당히 비켜서서 진행되어왔다.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불거진 난자 채취 과정의 윤리적인 문제는 황우석 논란을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이전까지 ‘황우석 신화’에 도전하는 것은 윤리를 포함해 그 어떤 것이든 반국가적이고 편협한 행위로 ‘지탄’받던 분위기 속에서 난자 매매와 여성 연구원의 난자 기증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이제 윤리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중요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하지만 이내 국면은 또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고, 사태는 현저하게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더욱 멀어지기 시작했다. ‘연구 윤리’ 문제로 윤리적 차원의 고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PD수첩’의 ‘취재 윤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황우석 연구의 비윤리성은 잘못된 취재 관행에 대한 성토에 매몰됐다. 이 과정에서 ‘PD수첩’은 모든 광고주가 끊겨나갈 정도로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포화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이때부터 배아줄기세포의 진위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12월초 소장 생명과학 연구자들에 의해 구체적인 의혹들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고, 황교수의 논문이 실렸던 사이언스와 피츠버그대도 조사에 나섰다.
급기야 12월 15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줄기세포는 없다”는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폭탄 선언이 황우석 논란의 종식을 고하는가 싶었지만, 이튿날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노 이사장의 거듭된 기자회견으로 논란이 이어지면서 황우석 논란은 논문 조작에 이어 음모론까지 등장하면서 점입가경의 행색이 됐다.
판단의 준거는 윤리적 관점
이제 논란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회의 주장과 입장으로 볼 때, 사실 수개월을 끌어가고 있는 이 논란은 그 본질과 핵심에서 엇나간 것으로 보인다.
왜냐 하면, 애당초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배아가 인간 생명이냐 아니냐, 혹은 하나의 온전한 생명인 인간 배아를 실험실의 한갓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 윤리, 취재 윤리, 논문의 진위 등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공방은 가장 미약한 인간 존재인 인간 배아의 생명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교회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이 논란의 성격은 엇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논란이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과학에 있어서도 윤리적인 측면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선 논란의 시발이 된 난자 획득 과정의 윤리성 논란에서 과학적 연구에도 윤리적 고려가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났고, 언론 역시 취재 과정의 윤리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으며, 과학자는 단 한 마디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논문 조작 사건을 통해 드러냈다.
결국 이번 논란의 처음부터 끝까지 윤리적 관점은 가장 중요한 판단의 지침이었던 것이다. 결국 과학 역시 윤리적 판단의 영역을 초월할 수 없음을 이제 우리는 실제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알 수 있게 됐다.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이 논란이 결국은 인간 생명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 배아의 ‘생명권’에 관련된 것이다.
연구 과정의 윤리적 지침의 준수, 한 치도 거짓이 없는 정직한 연구 논문도 당연히 중요하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인간 배아의 생명을 담보로, 그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이번 논란을 통해서 나름대로 확인될 수 있었던 성과는 윤리적 고려가 단지 종교적 신념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논쟁의 당사자들이나 그 논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어렴풋하게나마 시사됐다는 점이다.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논쟁이 본격화되기 전,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반대 입장은 주로 종교계를 중심으로 표명됐고, 그 때문에 언론과 여론은 황우석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과학 대 종교의 대결 구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 때문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입장 표명은 정당한 과학의 진보를 ‘발목 잡는’ 편협한 종교적 신념의 발로로 치부됐다. 하지만 작금의 논란의 과정을 거치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이제 종교성에 국한되지 않는 직업적, 시민적 지침으로 전환되고 있다.
‘생명의 문화’로
이제 황우석 논란은 ‘종교 대 과학’의 대결 구도에서 ‘진실 대 거짓’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전자는 배아 복제 연구자와 그 지지자들이 종교에 편협성과 집단주의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이념적 전술이자 수사적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됐고, 이를 통해서 국민 일반을 종교 및 종교인들과 대치시키려는 의도를 다분히 갖고 있었다.
반면 후자는 과학적 진실에 대한 과학자들 스스로 자정 능력의 발휘였고, 거짓되고 비윤리적인 언행을 일삼았던 일부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가 배아 복제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교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종교적 계명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자연법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편협한 교리적 입장’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시민사회 나아가 정직한 과학자들과 뜻을 같이 한다.
황우석 논쟁, 비록 핵심에서 엇나간 논쟁이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제 우리는 ‘진실 vs 거짓’의 공방에서 더 나아가 ‘생명 vs 반생명’의 가치 판단을 위해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토론의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 가장 미약한 인간 존재일지라도 거대한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여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작금의 황우석 논란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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