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 기뻐합니다”
‘북치는 소년’
성탄절이 되면 김종삼 시인의 ‘북치는 소년’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 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 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 처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거리에는 온통 네온사인이 물결을 이루고 아이들은 산타를 기다리고,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에 찾아온 축제의 분위기에 들떠 또 한 해를 비틀거리며 떠나보냅니다. 무엇을 위해 아름답게 장식을 하고 불을 밝히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남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냅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리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서양나라의 풍경들을 옮겨 놓은 거리와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성탄절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집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익숙한 우리의 눈은 외양간 한 모퉁이에 짐승들 속에 누워계신 가난한 아기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진눈깨비 날리는 겨울의 한 복판에서 사는 일에 지치고, 살아가야할 일들에 기가 죽은 사람들에게 내용 없는 성탄절의 소란스러움은 마치 가난한 아이에게 온 아름다운 카드처럼낯선 풍경일 뿐입니다.
어린시절 나에게는 산타가 성탄절의 주인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 보다 산타를 기다렸고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다줄 선물의 목록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조건은 내키지 않았지만 산타는 내 어린 시절 성탄절의 모든 추억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산타는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성탄절이 지루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그렇듯 성탄절이 돌아오면 남들처럼 카드를 주고 받고, 선물을 기다리고, 한바탕 놀 생각으로 들떠 지내곤 했습니다.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나를 위한 산타’를 망연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타가 없는 성탄절은 지루한 축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서 부터는 나는 산타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자리 하나를 마련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나니 성탄절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산타에 열광하는 세상의 모습을 봅니다. 매스컴은 예수님을 밀쳐낸 자리에 산타를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으로 등극시키고 아이들처럼 들뜨게 만듭니다. 거룩한 기쁨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얄팍한 상흔과 값싼 낭만이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산타와 함께’ 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탄절입니다. 그분께서 가난한 우리에게 오셨듯이 우리도 가난한 이웃에게 다가갈 때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분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듯이 우리도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불하나 밝힐 때 그분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다는 영적 진실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깨달을 때에 성탄은 거룩한 기쁨의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 동안 마음을 고쳐먹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 하느님을 향한 길을 향해 발길을 돌린 사람은 이 성탄절에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그 분을 알아보고 그분을 만난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 구나.”(이사야 52, 7)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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