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진리 깨닫고 평화의 복음 선포하자
평화는 천상의 선물이며 하느님의 은총
국제 공동체는 군비 축소에 온 힘 쏟아야
[전문]
교회는 지난 1967년 12월 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68년 1월 1일을 ‘평화의 날’로 선포한 이후 매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오고 있다. 교황은 매년 평화의 날마다 특별한 주제를 담은 메지시를 발표해 전 세계 모든 가톨릭신자들과 선의의 모든 이들이 동조해줄 것을 요청해오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베드로좌에 선출된 이후 발표한 자신의 첫 번째 평화의 날 담화에서 평화를 단순히 전쟁의 부재에 국한시켜서는 안 됨을 역설하고 있다.
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평안을
새해를 시작하며 전 세계의 모든 사람, 특히 폭력과 무력 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평안을 빕니다.
올해 성찰 주제인 ‘진리 안의 평화’는, 언제 어디서든 진리의 빛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인간은 자연히 평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확신을 나타냅니다. 4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막하며 발표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인류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참으로 더욱 인간다운 세계를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사람이 새로운 마음으로 평화의 진리를 향하여 돌아서지 않고서는 그 일을 성취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평화의 진리’라는 표현은 실제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하려면, 평화를 단순히 무력 전쟁의 부재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인간 사회 안에 그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질서의 열매”, “언제나 더욱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류가 실현하여야 할” 질서의 열매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계획하시고 바라신 질서의 열매인 평화는 본질적으로 불굴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우리 안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염원과 바람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천상 선물이며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모든 차원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 행사를 요구합니다. 곧 진리와 정의와 자유와 사랑 안에서 인류 역사가 하느님의 질서를 따르도록 할 책임입니다. 모든 진정한 평화 추구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의 길로
평화는 특정한 문화적 정체성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염원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 위대한 선에 이바지할 의무를 느껴야 하며, 어떠한 형태의 거짓도 인간관계를 해치지 못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한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차이점만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일은 이러한 근본 진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초월적인 공동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순수한 의향으로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이러한 진리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가 다스리는 사회, 각 개인을 위한 선익이 최대한 실현되는 사회에서 개별 시민이 사이좋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화의 진리는 모든 이가 풍요롭고 진실한 관계를 맺도록 요구하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고 이 길로 나아가며 다른 이들과 투명한 관계를 맺고 약속에 충실할 것을 촉구합니다.
평화의 진리는 전쟁의 비극 한가운데서도 은혜로운 진리의 빛을 발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사목 헌장’에서 “불행히도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적대 편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민간인들에 대한 전쟁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제 공동체는 국제인도주의법을 만들었습니다. 교황청은 평화의 진리가 전쟁 상황에서도 존재한다는 확신으로 다양한 상황과 배경에서 인도주의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으며, 그 법을 존중하고 즉각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국제인도주의법은 평화의 진리의 본질적 요구를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모든 민족은 이 법을 존중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인도주의법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 법이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오늘날의 무력 분쟁과 갈수록 새로워지고 첨단화되는 무기 사용의 가변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규범으로 이 법을 쇄신해 나가야 합니다.
군종교구, 충실한 진리 전달자 되길
군종교구들은 이러한 힘겨운 일선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종교구장뿐만 아니라 군종 신부들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평화의 진리의 충실한 전달자가 되기를 권고합니다.
오늘날 테러리즘으로 평화의 진리가 계속해서 심각하게 훼손되고 또한 거부되고 있습니다. 허무주의뿐만 아니라 근본주의로 불리는 종교 광신주의도 테러범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이를 조장합니다. 허무주의와 광신적인 근본주의는 똑같이 진리와 비뚤어진 관계에 있습니다. 허무주의자들은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진리를 힘으로 강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허무주의와 근본주의는 그 기원이 다르고 그 문화적 배경도 다르지만 인간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자체를 경시하는 위험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공통된 비극적 산물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진리를 왜곡한 결과입니다. 허무주의가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적 현존을 부정한다면, 광신적 근본주의는 하느님을 자체적으로 만든 우상으로 대치시킴으로써 그분의 자애롭고 자비로운 모습을 왜곡시킵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을 생각할 때, 모든 가톨릭 신자는 무엇보다도 ‘평화의 복음’을 더욱더 온전히 선포하고 실현하며, 하느님의 온전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평화의 진리를 강화하는 첫째가는 절대적인 조건임을 보여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 그리고 선의의 모든 사람과 폭넓게 협력함으로써 평화의 일꾼으로 불가분의 진리이며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확신에 찬 증언을 하여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군비가 계속 증가하고 무기 매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군비 축소를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 공동체가 이룩해 온 정치적 법률적 과정은 일반적 무관심 속에 난항에 빠져 있습니다. 국제 공동체가 지혜롭고 용기 있게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합심하여 군비 축소의 과정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군비 축소의 첫 수혜자는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과거에 수없이 약속받은 발전에 대한 권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연합의 최근 정기 총회에서도 재천명되었습니다. 교회는 국제연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광범위한 세계화 현상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세계의 변화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국제 연합의 제도와 운영의 쇄신을 바랍니다. 국제연합기구는 세상에 정의와 연대와 평화의 가치들을 증진하는 더욱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평화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참되고 영원한 평화는 반드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되새겨 줍니다. 이 진리만이 정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랑과 연대를 받아들이게 하며 모든 사람이 참으로 자유롭고 일치된 인류 가족을 위하여 일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진리 위에서만 참 평화의 기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담화를 마치며,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깨어있고 늘 준비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권유하고자 합니다. 날마다 복음에 귀 기울이고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진리 위에 평화를 구축하는 법을 배웁시다. 모든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진리를 더욱 온전히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자각시키기 위한 교육과 증언 활동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평화는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간청하여야 하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평화를 더욱 존중하고 이 세상에 평화를 더욱 견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함으로써 더욱 평화롭고 안정된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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