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최후의 만찬’ ‘동굴의 성모’등 남겨
수학 물리 등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
대개 후대의 사람들에게 ‘거장’으로 기억되는데에는 단 한 점의 작품으로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 여러 점이고, 모든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다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거리낌없이 부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천재 중 하나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놀라운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동굴의 성모’ 등 몇 점의 작품만으로도 거장의 반열에 든다.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 즉 원근법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접근,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을 가장 완벽하게 완성한 그의 천재성은 이렇게 몇 점의 작품만으로도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하게 한다.
더욱이 그는 예술과 과학의 놀라운 결합을 통해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과학자로서도 기억되게 한다. 예술가는 자연의 법칙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그는 인간 신체를 가장 완벽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그 해부학적 구조를 탐구한 것을 비롯해, 수학, 물리, 천문, 식물, 지리, 토목, 기계 등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만능인(萬能人)에 가장 부합하는 인간이었다.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빈치(Vinci)라는 곳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는 15세 때 피렌체의 베로키오 공방(工房)에 들어가 미술가로서의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후 1476년까지 공방에서 계속 일하면서, 비록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성 예로니모’와 ‘동방 박사들의 경배’ 등의 그림에서 그의 재능은 이미 충분히 표현돼 있었다.
30세가 되던 1482년 그는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그는 20여년 동안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밀라노에 도착한 직후인 1483년 그린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제단화 ‘동굴의 성모’는 인물의 윤곽선보다는 빛에 따른 명암의 대비를 통해 인물 형태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이른바 키아로스쿠로(명암) 기법을 완벽하게 구사한 작품이다.
1495년부터 1497년경까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은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이상을 고전적으로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으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벽화는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것이다.
밀라노에서 17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레오나르도는 프랑스군의 밀라노 침공으로 인해 밀라노를 떠났고, 피렌체로 돌아온 뒤에는 1502년 이탈리아 중부 체사레 보르지아군의 군사토목기사로 종군한다. 보르지아의 실각으로 이듬해 3월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또 한 점의 명작인 ‘모나리자’의 제작에 착수했다.
1506년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밀라노에 초빙된 그는 루이 12세의 궁정화가 겸 기수자로서 6년여 동안 밀라노에 머물렀다. ‘동굴의 성모’가 이때 완성됐고, ‘성 안나’와 ‘세례자 요한’의 제작이 시작됐다. 특히 ‘성 안나’는 그의 예술의 귀결인 동시에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1513년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인 네무르공(公) 주리아노 데 메디치를 섬기기 위해 로마에 갔고, 교황청에 체류했지만 로마에서는 큰 업적을 찾아볼 수 없다.
1516년에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갔고 이곳에서 궁정화가로서 활동하면서 방대한 양의 수기를 정리했다. 이 수기는 평생에 걸쳐 이룬 여러 과학의 연구 및 예술론과 인생론이 기록된 것이다. 현재 그 일부 5천여장이 서구 각지에 분산 소장돼 있다.
예술가이며 과학자
이미 언급했듯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 작품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예술상의 유작들은 많지 않지만 그가 미술사에 남긴 발자취는 여타 예술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조각, 건축 등에 있어서도 그가 구현해낸 작품들은 거의 없지만 그 완성품의 근본이 되는 소묘와 밑그림은 방대하다.
손으로 쓴 수고(手稿) 5천여장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분산돼 있는데, 밑그림의 경우 200여매나 되는 해부도 외에 기계공학, 수력학, 축성, 비상(비행기) 등에 관한 고안과 연구로 가득하다.
특히 이러한 수고들 중에는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이동하는 장치, 관개용 배수장치, 병기와 자동인형, 비행을 위한 장치 등 온갖 분야의 것들이 포함돼 있다. 그의 원래의 작품 활동은 회화와 조각에서 시작됐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심화되면서 그는 정밀함과 고도의 관찰력을 요구했다.
예컨대, 인물을 그릴 때에도 그는 인체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서 해부를 했다. ‘정확하고도 완전한 지식’을 위해서 인체 해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를 그리기 위해서는 공기의 무게와 밀도의 관계, 풍압이 날개에 미치는 힘의 영향에 대해 알아야 했고, 낙하산 같은 장치까지도 고안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상상만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의 통역자가 되려고 한 예술가들을 믿지 말라”며 “실험으로부터 시작해 그로써 이론을 검증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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