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곳, 진한 ‘선교 열정’ 묻어나
1929년부터 필리핀서 선교 시작
전쟁 어려움 속에도 쉼없는 활동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지난해 12월 19~27일 필리핀에서 가진 젊은이 선교체험은 ‘외방선교’의 의미를 일깨우고 선교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한 몫한 행사가 됐다. 선교체험단원들은 마닐라를 거쳐 민다나오 섬으로 이동,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활동하고 있는 여러 장소들을 방문해 외방선교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했다. 특히 선교체험단은 필리핀 젊은이들과의 다양한 교류와 나눔행사를 통해 ‘주님안에 한 형제’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돌아왔다. 본지는 한국 젊은 신자들의 이러한 체험들을 두 번에 걸쳐 생생하게 연재한다.
【필리핀 롤롬보이 장병일 기자】
“외방선교가 무엇인지, 특히 필리핀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오세요. 무엇보다도 안전이 제일입니다.”
12월 19일 파견미사에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 민디오니시오 신부의 당부의 말을 가슴에 새긴 선교체험단은 8박9일간의 긴 여정에 돌입했다. 마닐라에서의 첫 방문지는 롤롬보이의 김대건 성인 성지. 마닐라 시내에서 60㎞ 정도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김대건 성인이 마카오 민란을 피해 1837년과 1839년 두 번에 걸쳐 피난을 온 장소. ‘망향의 망고나무.’ 당시 신학생이던 성인이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이 나무밑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15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의 생활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성인의 신앙적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 간다. 성인은 한국교회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 우리는…. 많은 신앙선조들의 노력에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힘이 보태져 아시아의 선두로 우뚝 선 한국교회. 물질적인 나눔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나누는데 인색해선 안되겠다는 마음이 불끈 솟아 오른다.
16개국서 활동하는 골롬반회
현재 골롬반회가 활동하고 있는 선교지역은 16개국이며 선교사들의 활동 형태도 다양하다. 소수민족을 위한 사목과 선교교육, 정의구현을 위한 교육 및 운동, 농촌 및 도시빈민사목, 본당사목, 청소년사목에다 타종교와의 대화, 학교 및 신학교 등지에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점차 선교지역의 교회들이 자립화됨에 따라 최근들어 창조질서 수호를 위한 자연생태보전운동과 장애인사목 등 특수사목쪽으로 사목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모든 민족들의 생활과 문화에 스며들어가도록 노력한다. 가난한 이들과의 결속이라는 입장에서 증거와 봉사, 대화를 통해 구원의 보편적 메시지를 선포한다’(골롬반회 회헌 103조)
이러한 회헌에 따라 현재 570명의 골롬반회 사제들은 골롬반 성인이 보여준 모습처럼 자신의 나라를 떠나, 다른 문화속에 살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활동은 1929년부터 시작됐다. 마닐라 중동부에 위치한 말라테에 근거를 마련한 골롬반회는 민다나오, 산발레스, 네그로스 등 필리핀 각지에 흩어져 선교활동을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여러명의 신부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으나, 쉼없는 선교의 열의에 힘입어 골롬반회는 필리핀의 250여개에 달하는 외국인 선교단체 중 가장 큰 단체가 됐다. 위기에 처해있던 많은 필리핀 교구들이 현재는 자체적으로 신부를 양성해 해외선교사로 파견하기 시작했고, 골롬반회는 선교 사명에 대한 이들의 역할을 주시하고 있다. 선교 잡지 ‘미션’을 발행해 해외로 파견된 필리핀 선교사들에게 보내고 있으며, 골롬반 선교사업에 평신도를 초대, 새로운 동반자로 양성해 여러 나라에 많은 필리핀 평신도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필리핀에도 골롬반회의 지원하에 한국인 평신도선교사들과 한국교구 소속 신부 두 명이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선교중심’ 말라테 성당
김대건 성인 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성 안드레아 수녀회(수원교구) 수녀의 배웅을 받으며 선교체험단이 발길을 옮긴 곳은 말라테 성당. 언급했듯이 골롬반회의 필리핀 선교 중심이 된 이 곳엔 역사적인 아픔이 배여있었다.
2차 대전 중 100만명 넘는 관할지역 사람들이 죽었고, 성당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한다. 이 성당에는 이러한 아픔을 승화시키는 의미있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물의 주제는 크게 두가지. 하나는 천지창조(창조이야기), 또 하나는 필리핀의 역사. 체험단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창조적인 선교에 대해, 필리핀의 역사안에 내재돼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2월 21일. 선교체험단은 마닐라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본격적인 선교체험과 필리핀 청년들과의 나눔을 위해 민다나오 가갸얀 공항에 도착했다.
“세계 속 가교역할 필요”
■ 골롬반회 필리핀지부장 브라이언 고어 신부
“보다 글로벌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속에서의 가교역할이 저희들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골롬반회 필리핀지부장 고어신부(61)는 ‘현대세계에 있어서 골롬반회 소명’을 이렇게 설명하며 생태.환경과 생명문화 건설, 타종교와의 대화 등을 소명의 구체적인 예로 제시했다. 생태.환경과 관련해 현재 골롬반회는 마닐라 인근에 4500여평에 달하는 ‘셀’(CELL)이라는 생태환경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셀에는 자연의 신비와 조화를 보여주는 학습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마닐라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자연체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1968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69년에 필리핀에 온 고어신부는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하다 누명을 쓰고 수감된 적도 있다. 고어신부의 ‘정의’에 대한 철학은 철저하다.
“올바른 일이라면 어떤 문제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복음적 가치안에서 이뤄진다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죠.”
1974년과 75년, 한국에 두 번 와봤다는 고어 신부는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고 지학순 주교’를 꼽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어 신부는 ‘황우석 교수’ 문제도 알고 있다며 “창조주에게 도전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가난한 필리핀 어린이에 희망·사랑 선물해요”
■ 평신도선교사 이경자씨
“성경 읽고 성가 부르며 아이들 아픈 마음 달래”
캐손시티에서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경자(크리스티나)씨. 5년째 필리핀에서 평신도선교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너무 좋아요. 언어나 문화 차이는 있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착하디 착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난한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에게 사랑을 불어 넣고 희망을 선사하느라 무척이나 바쁜 삶을 산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런지 출생신고가 안돼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학교도 갈 수 없고, 교육을 못받아서 직장을 잡기도 어렵다. 부모들 관심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처음 와보니까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성가대도 만들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읽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들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교육의 효과인가? ‘돈만 벌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던 아이들이 점차 변화되었다. 희망이 싹 튼 것이다.
“보람이죠. 타인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알게 됐답니다.”
전주교구 덕진본당 출신인 이씨. 직장생활과 교회활동으로 여느 청년못지 않게 활동적인 그가 평신도선교사의 꿈을 갖게 된 것은 피지에서의 평신도선교사 활동을 담은 한 권의 책을 본 순간부터. 이후 양성교육에 참가하고 필리핀에 오게 된 것.
“특별한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채워지지 않던 가슴 한구석의 공백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씨는 평신도선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관심있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이 있으면 용기를 내 과감히 시도해 보라.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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