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저자·텍스트·독자가 공감할 때
비로소 정확한 해석 작업할 수 있어
새해부터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새 번역 「성경」을 공인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삼십 여 년 간 사용하던 ‘공동번역 성서’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성서가 바뀐 것에 대해 자못 염려가 많으시다. 그럼 지금까지 사용했던 성서는 어떻게 한담?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시면 좋겠다. 이 참에 몇 가지 번역본들을 비교하면서 읽다 보면 성서 본문의 의미가 더욱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새 번역 ‘성경’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가 주관하여 고 임승필 신부님을 주축으로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와 그리스어로 씌어진 신약성서를 거의 15년에 걸쳐 새로 번역한 것으로, 원문의 뜻을 좀더 살리고, 교회 전례에 사용할 수 있도록 수려한 현대 우리말로 다듬은 것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권위로 선포한 공인본 번역 성서인 셈이다.
사실 성서는 원래 원본이라는 것이 없이 여러 개의 성서 사본(寫本)들이 낱권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교회가 신앙과 실천의 규범으로 인정될 만한 책들이라고 의견을 모아 교회의 권위로 정경(正經, canon)으로 공표한 책이다. 서방교회에서 신약성서 정경으로 27권의 문헌이 확정된 것은 서기 4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정경으로 인정하는 기준은 첫째가 사도성으로, 사도들로부터 유래된 것이어야만 교리의 확실한 출처와 순수성이 보증된다고 보았다. 둘째 원칙은 보편성인데, 중대한 문제에 대해 교회 전체가 오류에 빠질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셋째는 영감성의 문제인데, 교회가 신약성서의 영감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전승된 문헌들의 영감 여부를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인 책들이다.
성서 저자와 텍스트, 오늘날의 독자가 함께 공명하는 성서 해석
복음서를 읽다보면,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1900년도 더 전에 씌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 적절한 비유들, 짜임새 있는 구성에 놀랄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지리적 배경이나 풍습, 역사·사회적 상황 등이 하도 생소하여 도무지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현대의 독자들이 우리 앞에 놓인 성서라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서 저자들의 세계, 곧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비롯해서 성서의 내용을 기록하게 된 배경과 그 의도를 살펴야 한다. 성서는 오랜 구전 전승과 기록 전승의 과정을 거쳤고, 그 안에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0여 년 간 서양 성서학을 이끌어 왔던 역사 비평적 방법론은 바로 이러한 ‘성서 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된 것인데 우리 나라에 소개된 대부분의 성서해설서들은 이러한 방법론의 성과물이다.
그런가 하면 성서 텍스트를 깊이 이해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학 텍스트로서의 성서 자체, 곧 ‘성서 속의 세계’에 푹 빠져 들어가야만 한다. 성서 저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 이야기를 듣는 독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정한 문학 양식과 언어 법칙을 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원저자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문학 작품이 완성되어 출판되면 그 글은 원저자와 별도로 독자성을 갖게 되므로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오로지 그 작품 속에서 발견해야 된다.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성서학계에서는 이러한 신비평 이론을 수용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였다.
한편,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금 나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성서 작가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나’ 또는 ‘우리’, 곧 독자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성서학계에서는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성서 본문의 의미를 찾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서 앞의 세계’, 곧 성서를 지금 읽고 해석하는 독자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대체로 제3 세계의 신학자들이다.
이렇게 현대에는 다양한 성서 연구 방법론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성서를 읽을 때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서 저자와 성서 텍스트, 성서를 읽는 독자가 서로 공감하고 서로의 이해 지평을 맞춰갈 때라야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넘어서 정확한 해석 작업을 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성서연구방법론은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초보자를 위한 성서 연구 방법의 실제를 제시한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2001, 생활성서사)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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