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성당…급속한 경제성장의 그늘
평일미사에 신자 없고 성소도 부족
교육과 복지 시설 평신도에게 맡겨
[대만=유재우 기자]
어두운 교회 현실
고요했다. 신푸성당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지나가는 스쿠터의 경적 소리가 아니었다면 숨을 멈추고 있을 뻔 했다. 이중희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옷깃을 잡고 말했다. “한국과 다르죠? 1주일간 낯선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묘한 기대심리를 갖게 하는 이신부의 말이 마치 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 했다. 그 영화의 결말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짐을 풀고 바로 성당으로 갔다. 괜한 인기척을 냈다가는 누구에게 혼날 것만 같은 적막감이 엄습했다. 한 발짝 들어서자 향 내음이 코를 찔렀다. 입구 왼편에 놓여있는 간이 제단이 제대 중앙에 위치한 예수님상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누군가 나타났다. 기도를 하려고 온 사람이려니 생각하는 찰나 제대 앞을 정리하고 성당 내 기물을 살펴본다. 본당 선교사 주쥐잉(朱菊英·카타리나·59)씨. 미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크기로만 따지면 적지 않은 규모지만 교세가 적다보니 수도자가 필요없다.
어느덧 저녁, 성당 후문에 위치한 교육관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들여다보니 선교사 주씨와 낯선 남자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 앞에는 성서가 놓여있었다.
“예비신자 교리를 하는 겁니다.” 어느새 다가온 이신부. “제 발로 찾아오신 분입니다. 대만에서 저렇게 소신껏 성당에 오는 분은 드뭅니다.” 이신부는 말을 이었다. “한국 성당에서는 신자들을 늘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드문 풍경입니다. 평일 미사도 없는 상황인지라….”
이신부가 사목을 하고 있는 신푸본당에는 세례자 수만 817명. 적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신푸본당은 평일미사가 없다. 아니 있으나 신자들이 없다. 신자들이 참례하는 미사라고는 토요일 저녁과 주일 오전 뿐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신자들이 성당에 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교회 말고도 안식을 찾을 곳이 있다는 말이죠. 민간 신앙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종교를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 할 정도니까요.”
대만 교회의 현실이었다. 이밖에도 대만 교회에는 △성소부족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가정 파괴 △이주 노동자 문제 △고령화에 따른 노인복지와 장애인 복지 등 말 그대로 풀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다.
평신도 양성
약 150여년의 교회 역사. 그간 굴곡이 많았다. 특히 내전으로 인해 본토에서 이주한 다수의 사제들이 현재는 백발이 성성하다. 경제 성장은 성소 부족을 낳았다. 실재 대만 교회는 외국 수도회의 역할이 상당하다. 신죽교구만 하더라도 한국외방선교회 사제 6인이 본당을 맡고 있을 정도로 교구 사목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심각한 문제는 계속 야기됐다. 성소 부족은 그간 주요 거점에 설립해온 본당의 황폐화를 낳았고, 그 결과 신자수 역시 급감하게 됐다.
또 급성장한 대만의 경제 상황으로 인해 동남아의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그들을 위한 사목 방안 마련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대만 교회는 이러한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최근 각 본당은 봉사자들을 모집해 선교에 앞장서고 있으며 교회 기관이 맡고 있는 교육과 복지 시설을 평신도에게 맡기는 등 일정 부분을 평신도들에게 일임하고 있다.
즉 새로운 사회 상황에 맞는 신선한 교회 모습을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신부는 강한 어조로 “대만 교회의 현실이 어두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방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나은 공동체의 모습으로 가기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라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2층 침대 아래에 누웠다. 머리 위로 보이는 위 침대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듯한 느낌. 대만 교회의 앞에도 이러한 벽이 있는게 아닐까?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아, 옆에 어린이 집이 있었지.’ 이른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어느새 위층 침대까지 내려앉았다. 햇살, 그리고 희망…2층 침대는 어느새 밝은 기운으로 가득 채워졌다.
"사제 양성이 최대 과제 대만 교회 자생력부터 갖춰야"
■인터뷰 / 타이페이 대신학교 신학원장 리커미엔 주교
그럴 법도 했다. 성소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는 대만 교회의 젊은 사제들을 양성하는 최고 수장. 타이페이 대교구 대신학교 신학원장 리커미엔(李克免) 주교. 그의 얼굴에서는 가늠하기 힘든 책임감이 느껴졌다.
기운에 눌려 부드러운 어조로 넌지시 물었다. “대만 교회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대만 현지 사제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생각했다. 중국 교회와의 연대, 그리고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어느 정도 교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지 않은가….
“자립해야 합니다. 도움 받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조율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자생력을 잃게 됩니다.”
책임감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책임감을 넘어선 ‘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할 법 하다.
그의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사제가 무척 부족합니다. 그래서 선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성소와 선교는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옳았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이미 젊은층은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30대 이상의 성인들이 가끔 성소에 대해 기웃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신학교에서 양성되는 사제의 수도 평균 2명. 선교는 둘째 치고 교회를 알리기도 버거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리주교가 말을 이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주님 사업입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묘한 재주의 소유자.
주님 사업이라는 그의 말마따나 대화는 대만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사회 각 분야에서 교회의 모습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 선교사들의 역할이 큽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초기 교회의 공동체 모습을 구현하는 것 같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생력을 갖추고 싶지만 아직은 물을 주고 따사로운 햇볕을 줄 도구가 필요하다는 말. 리주교는 아시아 교회의 연대 필요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과정이 문제가 될 뿐이지 자연스레 연대하게 될 겁니다. 현재도 각국 교회가 일정 부분에 있어 상호 보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아시아 교회의 연대가 앞으로 심화될 것이라는 리주교. 그의 어투는 이미 자생력을 갖춘 대만 교회의 모습이었다.
리커미엔 주교는 지난 4월 성유축성미사 중 주교로 임명됐다. 리주교는 6월 중 주교서품식과 신죽교구장 착좌식을 가질 예정이다.
▧대만 교회 약사
-1626년 스페인 출신 선교사들 입국. 지룽과 딴수에이 등지에서 선교,
-1642년 네덜란드인의 선교지 점령으로 천주교 소멸.
-1859년 스페인 출신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들 까오슝에서 교회 설립.
-1949년 일본 51년간의 식민 통치 종결. 당시 천주교 신자 2만 명.
-이후 중국 내전.
-1950~60년 내전 후 본토에서 활동하던 사제와 외국인 선교사들 이주.
-1965년 사제들과 수도자, 외국인 선교사들이 도시마다 본당과 선교거점을 세움. 당시 천주교 신자 40만 명 육박.
-1970~80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신자들이 교회를 떠남. 당시 천주교 신자 약 30만 명. 총 인구의 1.3%.
▧대만 교회 현황(2004년 현재)
- 1개 대교구와 6개 교구에 추기경 1명, 주교 13명.
- 성직자 726명(수도회, 외국인 포함), 수도자 1156명(외국인 포함).
- 신자 29만 8028명 신학생은 23명(1개 신학교).
사진설명
▶신푸본당 주일미사. 오전에 한 번 있는 미사에는 평균 40여명이 참례한다. 교적에는 817명이 있다.
▶신푸성당 입구에 위치한 제단. 금옥만당이라고 적힌 작은 등이 멀리 보이는 예수상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타이페이 대신학교 신학원장 리커미엔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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