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장인을 꿈꾸며”
류강하(아우구스티노.30.서울 수유동본당)씨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유명 인사다. 주 의회가 류씨 때문에 열린 적도 있고, 신문기사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독일 공영방송은 류씨의 이야기를 영상물로 방영했다.
맥주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겠다고 무작정 독일 땅을 밟은 작은 한국인. 맥주에 대한 자존심만은 세계 최고인 독일인들은 호기심을 넘어 놀라움으로 그를 바라본다.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차로 20여분 가서 다다른 작은 마을 라버(Laaber). 류씨는 이 곳 플랑크 맥주(PLANK BIER) 양조장에서 플랑크 가문의 맥주제조법을 배우고 있다. 400년 역사를 가진 이 맥주는 2002년과 2004년 세계 맥주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유명한 전통맥주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던 류씨가 ‘삶의 변화를 주고 싶어’ 독일을 찾은 것은 2003년 10월. TV 프로그램을 보며 맥주 장인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어학연수 비자로 입국한 류씨는 맥주 양조장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노동허가서를 받고자 바이에른 주 의회에 편지를 보냈다. 독일맥주협회, 주 의회 의장에게도 편지를 썼다. 류씨에게 노동허가서를 발급해줄지를 결정하기 위해 주 의회가 따로 열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주 의회의 대답은 ‘노(No)’였다. 덧붙여 맥주 양조장보다는 대학에 입학해 배우라는 충고도 해줬다.
류씨는 결국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어를 배우며 플랑크 맥주 사장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2005년 7월 류씨는 다시 독일로 향했다.
이번에는 맥주집 사장인 미하이엘 플랑크씨가 발벗고 도움을 줬다. 맥주에 대한 류씨의 열정에 반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청년을 사람취급도 안하는 주정부 노동청의 처사에 항의하고, 노동허가서 발급에 필요한 서류도 직접 만들어 줬다. 거처도 맥주공장으로 옮기도록 배려했다.
마침내 2005년 9월 고대하던 노동허가서가 나왔다. 꼬박 2년만이었다.
류씨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보리 빻는 기계를 조절하고 맥주를 직접 병에 담는 작업을 한다. 막노동이나 다름없다. 월급도 없이 용돈 조금 받는 게 전부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일하려니 힘든 건 사실이죠. 푸대접을 받진 않지만 서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예요.”
그때마다 힘이 되는 건 다 큰 아들이 직장도 팽개치고 무작정 독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믿어주셨던 부모님 그리고 신앙이다.
류씨는 항상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다. 맥주를 만들던 수도자 같다는 농담을 듣긴 하지만 하느님이 계셨기에 독일에 올 마음을 잡았고 건강히 일 할 수 있다고 류씨는 자신 있게 말한다.
맥주 양조장에서 3년, 그리고 다시 1년을 대학에서 공부해 시험을 통과해야 꿈에 그리던 ‘맥주의 장인’이 될 수 있다. 지낸 시간보다 앞으로 보낼 시간이 많은 지금, 자신의 홈페이지에 아버지의 격려 글을 옮겨 놓은 류씨는 오늘도 새벽 잠을 떨치고 양조장으로 향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독일 레겐스부르크=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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